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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694
한자 喪禮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집필자 임승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평생 의례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사람이 죽은 후 장사 지내는 예법.

[개설]

상례는 인간의 숙명적인 마지막 길에 예를 갖추어 보내 드리는 절차를 말한다. 상례는 크게 상례(喪禮)와 장례(葬禮)로 나눌 수 있다. 상례·장례 의식은 죽은 자와 산 자를 분리하는 하나의 통과 의례로써 작용한다.

서산 지역에서 행하는 상례의 절차는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초종(初終)·염습(殮襲)·성복(成服)과 발인(發靷)·치장(治裝)·우제(虞祭)와 탈상(脫喪)으로 나뉘며, 그 안에서 약간의 변이 양상을 보인다.

[연원 및 변천]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불교와 유교 및 민간 신앙의 양식이 혼합된 상례가 행해졌으나 고려 후기 중국으로부터 『주자가례(朱子家禮)』가 전래되고 조선 시대에는 숭유 억불(崇儒抑佛)을 강행하면서 점차 유교 중심의 의례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풍속이 우리와 차이가 있기에 우리의 실정에 맞는 의례가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숙종 때의 도암(陶菴) 이재(李縡)[1680~1746]가 엮은 『사례편람(四禮便覽)』에 기록된 상례가 보편적으로 행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례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지역에 따라 일정하게 차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현대에는 불교·개신교·천주교 등 종교에 따라 다양한 예식이 도입되고 있다.

[절차]

서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전통적인 상례는 초종→ 염습→ 성복과 발인→ 치장→우제와 탈상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1. 초종

임종(臨終)을 앞둔 어른은 안방으로 모신다. 사랑방에서 지내던 분이라도 사랑에서 운명하면 객사라 하므로 반드시 안방에서 운명하시도록 한다.

숨을 거두면 먼저 초혼(招魂)을 한다. 지붕에 올라가거나 마당에서 망자의 적삼을 들고 “해동 조선 충청남도 서산시 ○○면 ○○리 ○○생!” 하고 부른 다음, “복!복!복!” 하고 외친다. 그리고 대문에는 사자상[혹은 사재밥]을 차린다. 대문 앞에 쌀 세 그릇, 망자의 신발, 동전 세 개[혹은 다섯 개]를 상에 올려놓는다.

수시(收屍)를 거둔 후에는 호상(護喪)을 세워 장례를 주관하도록 한다. 호상은 장사를 전체적으로 주관하고 부고장을 돌리는 역할을 한다. 한편, 상주는 망자의 직계 자손이 된다. 부모의 상인 경우에는 맏아들이 상주가 되며, 부인이 사망하면 남편이 상주가 되기도 한다. 망자와 상주가 어떤 관계냐에 따라 상복을 입기 전에 두루마기의 한쪽 팔을 빼고 입는다. 부친상의 경우에는 상주가 왼 팔을 빼고 입고, 모친상의 경우에는 오른 팔을 빼고 입는다.

2. 염습

가족들이 고인의 얼굴을 본 후에 염습을 한다. 염습은 아무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맡긴다. 가급적이면 일가친척 중에 이를 잘하는 사람이 맡는다.

습(襲)은 향나무 끓인 물로 고인의 몸을 씻기고 손발톱을 잘라 삼베 주머니에 넣는 식으로 진행된다. 염(殮)은 수의를 입히고 시신을 일곱 마디에 21매를 묶는다. 서산 지역에서는 본래 일곱 매로 시신을 매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반적으로 21매를 묶는다. 일곱 매만 묶으면 너무 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자의 신장이 크면 매듭의 수를 더 늘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매듭의 수는 반드시 홀수로 한다. 마디에는 저승길 노자의 의미로 흰 종이 고깔을 끼운다. 자손들은 고인의 입 안에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천석이요, 만석이요!” 하면서 쌀을 넣는다. 한편, 염습에 사용하는 칼과 가위 등 도구는 절대 시신 위로 넘기지 않는다. 염습이 끝나면 입관을 한다.

3. 성복과 발인

입관 후에 성복제를 지낸다. 성복한 후에는 조석으로 상식을 올린다. 상식은 생전에 드시던 대로 간단히 차려 올리는데, 내린 음식은 아들·며느리가 먹는다.

서산 지역에서는 ‘상식 밥 3년 먹고 나면 화색이 다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이는 귀신이 먹은 밥이라 진기가 모두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3년 탈상이 고되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성복제를 한 후에 비로소 조문객을 받는다. 과거에는 조문 올 때 초·계란·술·팥죽 등 현물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근래에는 모두 돈으로 한다.

발인은 보통 사흘째 되는 날 한다. 예전에는 5일장, 7일장을 하는 예도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발인 시에는 마을 공동 상여를 이용하며, 약 11~13명 정도의 상여꾼이 함께한다. 운상 행렬은 공포, 명정, 만장, 요여 혹은 영정 사진, 요령잡이, 상여, 상주와 조문객의 순서이다. 운상을 하는 도중에 다리를 만나거나 고개를 넘어야 할 때에는 상여꾼들이 상여를 세우기도 한다. 상여를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에 장난삼아 상여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면 사위가 상여꾼들에게 술과 음식을 주거나 돈을 걸어서 상여가 가기를 재촉한다.

4. 치장

장례 당일이나 전날 산역을 맡은 사람들이 묏자리를 만든다. 묏자리를 파기 전에 산신제와 개토제를 지내고 광중을 만들어 놓는다. 운상 행렬이 장지에 도착하면 상여를 내려놓고 그 앞에 병풍을 친 후 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낸다. 만약 조문을 못한 사람이 있으면 여기에서 문상을 하기도 한다. 문상을 모두 마치면 상여에서 시신을 내려서 하관 준비를 한다. 이때 특별히 망자와 생시를 따져 보아 하관하는 모습을 보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지관이 ‘○○생은 피하시오’라고 알려 준다. 하관이 끝나면 상주가 망자의 가슴 부분에 청실과 홍실을 던져서 폐백을 드린다. 그 다음에 명정을 놓고 취토를 한다. 그 후에 산역을 맡은 이들이 흙을 다지며 덮는다. 서산 지역에서는 거의 봉분제를 지낸 후에 집으로 돌아온다.

5. 우제와 탈상

혼백을 모시고 집에 돌아온 후, 대청이나 방에 고연을 만들어 혼백을 모신다. 그리고 탈상할 때까지 조석으로 상식을 올린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는 삭망제를 지낸다.

한편 장지에서 돌아온 당일에 초우제, 다음날 재우제를 지낸다. 삼우제는 사흘이나 나흘 만에 지낸다. 우제를 마치고 석 달 열흘 후에 졸곡제를 지낸다. 가정에 따라 졸곡제를 지내지 않고 소상과 대상을 치르기도 한다. 근래에는 탈상 기간이 짧아져 49일만 지나면 탈상하고 복을 벗는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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