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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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大德 |
영어음역 | Gim Daedeok |
이칭/별칭 | 득지(得之),소봉(蘇峰),이안당(易安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조선 후기 서산군수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 자는 득지(得之), 호는 소봉(蘇峰)·이안당(易安堂). 증조할아버지는 김숙문(金叔文)이고, 할아버지는 김종(金綜),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를 지낸 김원록(金元祿)이다. 어머니는 원주 원씨로 원국량(元國良)의 딸이다. 김대덕(金大德)은 큰아버지 김원상(金元祥)에게 입양된 후 지금의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마을에 정착하여 광산 김씨 소봉공파(蘇烽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활동 사항]
김대덕[1577~1639]은 1600년(선조 33) 서산군수로 부임하여 학문을 장려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그는 부임 후 ‘서산오현(瑞山五賢)’인 최치원(崔致遠), 정신보(鄭臣保), 정인경(鄭仁卿), 유숙(柳淑), 고경명(高敬命)을 받들어 부성산 오현각(五賢閣)을 짓고, 각각을 추모하는 영시(詠詩)를 써 관아의 정문 누각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서산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자신들의 사표(師表)로 삼고 학문에 힘쓰도록 장려하였다.
[학문과 저술]
『대동야승(大東野乘)』에 수록된 『응천일록(凝川日錄)』 중 1630년(인조 8) 2월 2일의 기록에 김대덕을 중국 황실에 보내는 사신으로 추천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에는 “현존하는 사람 중 글재주와 꾀가 있고 충실하며 일에 익숙한 사람으로는 김대덕 만한 사람을 실로 얻기 쉽지 않다”라고 하여 김대덕의 학문과 성품을 칭송하고 있다. 한편 장유(張維)[1587~1638]의 『계곡선생집(谿谷先生集)』에 김대덕의 시문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묘소]
김대덕의 묘소는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조성되었으며, 묘소 앞에 석비와 상석, 동자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