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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조합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467
한자 貯蓄組合
영어음역 Jeochukjohap
영어의미역 a citizens' voluntary society for saving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지수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서산군수를 중심으로 저축조합 조직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1년 12월연표보기 - 부석사 저축계 조직
성격 사설 금융 조합

[정의]

1919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조직된 사설 금고.

[설립 목적]

총독부가 저축조합의 설립을 장려했던 것은 ‘근검저축’, ‘식산(殖産)’ 차원에서였다. 서산의 저축조합은 1919년경 군수 지희열이 군내의 모든 면민들로부터 매년 하모추조(夏牟秋租)를 몇 승(升)씩 거두어 조직한 조합 형태의 조직이었다. 조합장은 해당 면장이나 해당 지역의 중심인, 즉 면 단위 유지들이었다.

서산 지역의 경우 각 면 단위로 설립된 저축조합은 처음부터 각 면 단위로 보통학교를 설립할 목적으로 조성된 일종의 ‘기금’이었다고 판단된다. 특별한 사례로 1921년 12월 부석사 주지와 사하촌[절 아래 마을] 유지들의 발의로 부석사 저축계가 조직되기도 했는데, 조직의 목적은 지주와 소작인의 화합이었으며 회장, 재무, 서기, 찬성(贊成) 등이 두어졌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저축조합은 군청의 감독하에서 자금의 출납, 대차, 예금과 지불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당시 서산 지역에는 개인 대금업자[조선인 11명, 일본인 10명]가 다수 있었으며 대부분 읍내에 상설 점포를 소유한 상인들이었다. 개인 대금업자였던 이응우(李應雨)는 당시 현직 면협의회 의원이었다. 이응우는 꾸준한 출자와 이식 활동을 통해 조합 자산이 불어나자 이를 보통학교 설립 기금으로 기부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관리 부실로 대부 미회수금이 늘어나는 등 폐해가 속출하자 당시 군수 원은상(元殷常)은 해산과 청산을 명하였다. 『서산군지』에 따르면, 청산 작업은 이민영 군수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일제는 문화 통치를 표방하면서 1개 면에 1개의 보통학교를 설립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또한 학교 설립 기금을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지역 유지나 주민들에게 강제로 저축과 기부를 강요하였는데, 저축조합은 이를 충당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생겨난 일종의 사설 금고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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