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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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平里堤防崩壞 |
이칭/별칭 | 병술년 대평리 물난리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철원 |
[정의]
1946년 현 세종특별자치시 대평동 인근의 금강 제방이 홍수로 붕괴된 수해 사건.
[역사적 배경]
세종특별자치시 대평동은 조선시대 공주목 양야리면(陽也里面)에 속하였다. 1908년에 감성장(4일, 9일)을 폐지하고 대평장(2일, 7일)을 신설하면서 5일장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청남도 연기군으로 편입되면서 명탄면과 합하여 금남면 관할이 되었다. 이때 대평(大坪), 상거리(上巨里), 하거리(下巨里), 고사동(高沙洞)을 합하여 대평리라 칭하고 금남면 소재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1~1932년에 금남면 구간 금강 제방이 축조되어 강변에 위치한 대평리를 수해로부터 보호하는 구조물 역할을 하였다.
[경과]
1946년 6월 하순 장마철에 전국적으로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 연기군 지역에도 곳곳에 수해가 발생하였는데 연기군청이 소재한 조치원읍의 조천 제방이 범람할 위기에 처하였다. 그런데 한순간 하천물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금남면 대평리 제방이 붕괴하였기 때문이었다. 강우량은 800㎜ 정도였으며, 금강 제방이 위험 수위에 도달하자 금남의용소방대원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주민들을 인근 비학산 자락과 강당산 등 용포리로 긴급 대피시켰다. 얼마 후 제방이 무너지면서 마을이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고, 이재민들은 멀리서 집과 가재도구가 떠내려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결과]
금강 제방이 붕괴되면서 조치원은 범람 위기를 넘겼으나 금남면 대평리 주민 360여 가구가 수몰되는 등 엄청난 수해를 보았다. 대평리 지역은 폐허 상태가 되어 복구를 포기하고 농경지로 개간하였으며, 이후 용포리가 금남면 소재지로 되었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이곳이 세종특별자치시 편입 예정 지역에 포함되어 대평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