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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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發 |
영어음역 | Min Bal |
이칭/별칭 | 분충(奮忠),위양(威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연숙 |
[정의]
조선 전기 활동한 무신.
[가계]
본관은 여흥. 자는 분충(奮忠). 할아버지는 여원군 민백훤(閔伯萱)이고, 아버지는 좌찬성 여강군 민수산(閔壽山)이다. 여흥민씨 위양공파의 파조이다.
[활동사항]
민발은 1437년(세종 19)에 음보로 내금위에 속하였다가 여러 벼슬을 거쳐 부사직에 이르렀다. 1450년 수양대군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53년(단종 1)에는 사복시대호군으로 있다가 무과에 합격하여 사복시윤이 되었다. 이어 첨지중추원사로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그 뒤 주로 중추부에 속하여 있으면서 동지중추원사와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1464년(세조 10) 중추원사가 되었다. 1466년에는 무과중시와 등준시에 합격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고 용양위상호군에 임명되었다.
1467년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총통도장 율원군(栗元君) 이종(李倧)의 휘하가 되어 평정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 3등에 책록되고 중추부동지사가 되었으며 동시에 여산군(驪山君)에 봉해졌다. 1468년 10월에 형 민서(閔敍)가 남이(南怡)와 함께 모반한 혐의로 처형되자 이에 연루되어 관직과 공신록을 삭탈당하고 충청북도 충주로 귀양을 갔다. 그러나 이듬해 예종의 특지로 풀려나고 관작이 복구되었다.
[상훈과 추모]
논산시 연산면 송산리 사당에서 불천위제사를 모시고 있으며, 시호는 위양(威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