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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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 依瞻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오례1길 68-13[오례리 31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지원 |
건립 시기/일시 | 1611년 - 밀양 의첨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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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97년 - 밀양 의첨재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0년 - 밀양 의첨재 뒷채 복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11월 14일 - 의첨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0호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50년 - 밀양 의첨재 화재로 정당과 가묘 소실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8년 12월 20일 - 의첨재에서 밀양 의첨재로 개칭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6월 29일 - 밀양 의첨재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밀양 의첨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오례1길 68-13[오례리 315] |
원소재지 | 밀양 의첨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오례1길 68-13[오례리 315] |
성격 | 재실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6칸 |
측면 칸수 | 3칸 |
관리자 | 함평이씨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0호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오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개설]
밀양 의첨재(密陽依瞻齋)는 광해군 때 인물인 이선지(李先智)가 1611년에 창건하여 살았으며 종가로 계승되어 온 집이다. 이선지는 무과에 합격한 후 선전관경역과 절충장군 호군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인물로서 인목대비의 유폐, 백부의 자살 등을 겪은 후 어머니의 고향인 경상남도 밀양으로 낙향하게 되었다.
밀양 의첨재는 1985년 11월 14일 의첨재라는 명칭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0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12월 20일 밀양 의첨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위치]
밀양 의첨재는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오례리에 있다. 원래 ‘오례리(烏禮里)’였으나, 이선지가 전거한 이후 까마귀 오(烏)가 다섯 오(五)로 개칭되었다고 전해진다.
[변천]
밀양 의첨재는 1850년에 화재로 정당(正堂)과 가묘가 소실되고, 사랑채와 대문채만 남아 개수하였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낡은 건물들을 개수하다가, 1897년 크게 중수하여 ‘의첨재’라고 현액하였다. 의첨(依瞻)은 ‘의지하고 쳐다본다’라는 뜻으로 이선지가 낙향하여 어머니 묘를 지키며 어머니께 의지하고, 전라도에 안치된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재계(齋戒)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당의 뒷채는 소실된 정당의 주춧돌이 발견되어 1990년도에 복원한 건물이다.
[형태]
밀양 의첨재의 정당 건물은 6칸 맞배지붕 형식이며 대문채보다 한 계단 높게 지었다. 좌측에 방이 1칸, 대청마루 2칸, 우측에 방이 2칸, 그리고 부엌 1칸이 연결된 총 6칸의 한옥 형태이다. 정당 뒷채 또한 한 계단 높게 지어져 각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트여 있다.
[현황]
밀양 의첨재는 2022년 현재 대문채, 정당, 정당 뒷채가 모두 양호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밀양 의첨재는 대문채, 정당, 정당 뒷채가 삼(三)자 형태로 한 계단씩 높게 지어지는 건축적 특징이 있고, ‘오례리’라는 마을의 명칭과 관계된 이선지라는 인물과 관련된 건물로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