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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877
한자 仁川廣域市上水道事業本部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석정로 225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상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공공 기관
설립자 인천광역시
전화 032-120
홈페이지 인천광역시 상수도 사업 본부(http://www.waterworksh.incheon.kr)
설립 시기/일시 1989년 9월 1일연표보기 - 인천직할시 상수도 사업 본부로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인천직할시 상수도 사업 본부에서 인천광역시 상수도 사업 본부로 개칭
현 소재지 인천광역시 상수도 사업 본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석정로 225[도화동 77-7]지도보기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에 있는 상수도 관련 공공 기관.

[설립 목적]

인천광역시 상수도 사업 본부는 수질 연구 및 각 정수장과 주요 배·급수 시설에서 새로운 수도 기술의 개발 연구를 통하여 수질을 향상시키고, 저렴하고 안전하며 질 좋은 수돗물을 공급하는 한편 상수도 사업의 경영 개선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개설]

인천에 처음 상수도 도입이 계획된 것은 1905년 2월로, 재 인천 일본 거류 민단장이던 도미타가 가토[富田耕司 加藤] 영사 등 일본인 40여 명이 자신들의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시 급수 위원회를 설치하고 수도 건설을 추진키로 합의하면서부터이다. 이때의 계획은 문학산 계곡에 수원지를 건설하여 1인 1일 사용량을 약 38ℓ[10갤런]로 산정하고 약 1만 4000여 명에게 급수하고자 하였다. 1905년 인천 거주 일본인의 수가 1만 2700여 명이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이는 전적으로 일본인을 위한 식수 공급에 그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수원지의 규모가 너무 작고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되어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후 1906년 2월 서울과 인천 등의 수도 도입을 위해 탁지부에 수도국이 설치되었고, 6월에는 인천의 일본인들이 제안한 경인 수도 부설 계획이 수도국 주관으로 측량과 설계에 착수하였다. 11월 인천 수도 부설 공사는 1910년 완공 예정으로 공사에 착수하여 1908년 10월 송현 배수지가 준공되었다. 또한 인천 상수도를 운영, 관리하기 위한 인천 수도 사무소를 1910년 4월에 설치[내부 고시 제29호]하는 등 제반 준비도 서둘렀다. 1910년 9월 인천에서 노량진에 이르는 철관 부설 공사와 펌프실이 마무리되면서 인천 상수도 부설 공사는 완료되었고, 10월 30일 통수식을 거쳐 12월 1일부터 수돗물 급수가 시작되었다. 인천 수도 공사는 한국인 3만 명, 일본인 및 외국인 2만 5000명의 식수 및 생활용수 그리고 선박 및 공장용 1만 5000명 등 총 7만 명에게 1인당 하루 최대 약 111ℓ 공급을 목표로 한 것이다.

인천 상수도 건설은 착수 당시 탁지부 수도국에서 주관하였으나 1908년 1월 관제의 개정으로 내무부 토목국으로 이관되었고, 1910년 8월 조선 총독부가 설치되면서 조선 총독부 내무부 지방국 토목과에서 담당하였다. 1911년 4월 운영권이 경기도청으로 이관되었다.

1919년부터 노량진 수원지 공급 능력을 배가하는 증설 공사를 진행하던 중 조선 총독부가 그 관할권을 경성부로 이관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21년 인천 주민들이 이에 대한 부당성을 알리는 투쟁이 시작되었다. 주요 논지는 인천부 시민 모두가 사용하는 인천 수도를 경성부로 이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노량진 수원지 소유권 확보를 위한 인천 시민의 투쟁은 신문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1921년 11월 조선 총독부가 관할권을 경성부로 넘기지 않기로 당초의 방침을 번복함으로써 끝이 났다. 1922년 국영으로 운영되던 수도 사업이 각부로 이속되어 공영화되면서 수도 관리가 인천부로 귀속되었다.

[변천]

1946년 6월 1일 인천시 상수도 조례가 제정되었다. 이 조례는 국내 최초로 제정되었으며 1947년 5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인천의 수도 사업은 일반 회계에서 분리된 특별 회계로 운영되었다. 1970년 4월 13일 인천시 수도 사업 설치 조례[조례 제612호]가 제정되었다. 1981년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인천직할시 재무 회계 규칙 제214조의 공기업 특별 회계에 관한 규정에 의해 상수도 사업의 재정이 운영되다가 1984년 인천직할시 지방 공기업 상수도 사업 회계 규칙이 제정·공포되었고, 1989년 인천직할시 상하수국이 인천직할시 상수도 사업 본부로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상하수도국이 관장하던 하수 업무는 건설국으로 이관되고 순수 상수도 사업만 전담하는 사업 본부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2014년 5월 9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석정로 225[도화동 77-7] 행정타운으로 청사를 이전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인천광역시 상수도 사업 본부는 업무 정보화, 서비스 사업, 공식 브랜드인 ‘미추홀 참물’ 사업을 주된 업무로 하고 있다. 먼저 업무 정보화 사업을 보면,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업무 정보화의 고도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업무 정보화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바로 지리 정보 시스템(Geographic Information System)과 행정 전산화 시스템이다.

지리 정보 시스템은 지하 시설물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정보 시스템으로 상수도 분야에서는 송·배수관로 등 시설물들의 가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해 사고 발생을 예방하고, 긴급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이용되고 있다.

두 번째로, 서비스 사업을 들 수 있는데 인천광역시 상수도 사업 본부는 고객 중심의 행정과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다양하고 수준 높은 고객 만족 서비스를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1999년 8월에는 고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결의와 의지를 담은 ‘상수도 행정 서비스 헌장’을 제정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상수도 행정 서비스 헌장’은 먹는 물 기준 55개 항목의 수질 검사와 7일 전 단수 예고제, 민원 신고 30분 출동제, 검침 착오 8시간 내 정정, 수돗물 품질 인증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를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고객들이 언제라도 홈페이지나 본부 및 산하 기관에 설치된 민원 신고 센터를 통해 서비스 헌장에 위배되는 불편·불만 사항들을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식 브랜드인 ‘미추홀 참물’ 사업이 있다. 2006년 12월 9일 인천 수돗물의 공식 브랜드인 ‘미추홀 참물’을 브랜드화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BI(Brand Identity) 선포식을 통해 수돗물의 명품 시대 개막을 알렸다. 인천 수돗물의 브랜드화는 동북아의 허브 도시이자 세계 일류 명품 도시로 도약 중인 인천을 대표하는 명품 수돗물에 고유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최고 품질의 수돗물 대명사로 이미지를 확산하고, 향후 일반 음용수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것이다. ‘미추홀 참물’이라는 이름은 2005년 2월 시민 공모를 통해 선정된 것으로, 2006년 8월 특허청에 업무 표장 등록도 완료하였다. 한편, 인천광역시 상수도 사업 본부는 2004년 말부터 페트병 ‘미추홀 참물’을 생산, 각종 공공 행사에 무료로 공급하고 있다. ‘미추홀 참물’은 2008년 6월부터는 정수 과정에 활성탄 투입조를 설치해 염소 냄새를 제거함으로써 청량감이 더 높아졌다.

미추홀 참물의 브랜드화는 지방 자치 단체가 독점하던 일반 수돗물 개념을 넘어 자유 경쟁이 기본인 기업의 상품명이란 의미에서 단순한 이름의 부여가 아니라 향후 인천 상수도의 사업 방향을 예시하는 것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크다.

[현황]

인천광역시 상수도 사업 본부는 발족 당시 기술 담당관과 4과 11계, 4개의 수도 사업소 체제로 시작하여 2007년 본부 3부 10팀, 1연구소, 1관리소, 5정수장, 9사업소 체제로 확대되었으며, 2018년 현재 본부장을 중심으로 3부, 1연구소, 1관리소, 4정수 사업소, 5수도 사업소 체제로 운영 중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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