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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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幼稚園 |
영어공식명칭 | Jinju Kindergarte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판근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있었던 사립 유치원.
[설립경위]
1922년 10월 오경표(吳景杓), 천명옥(千命玉)이 자신의 고장에 유치원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다가 진주청년회관을 빌려 80여명의 아동을 원아로 하여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변천]
후원회가 없이 운영되던 유치원이 경영난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나 장덕명(張德明)의 도움으로 간신히 유지되었다. 1926년 10월, 학부형회가 조직되었고 이어 유치원의 유지회가 조직되었지만 경영난이 거듭되어 여러 차례 폐지될 위기에 처하곤 하였다.
이후 박규석(朴奎錫)이 후원회장을 맡아 유치원 교실을 신축하여 발전시켰고, 진주유치원은 당시 국내에서도 유명한 유치원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활동사항]
‘동요희극대회’(1929년 2월 25일)를 개최하여 어린이들의 가곡과 춤, 연설 등의 공연을 보고 관중들이 감탄하였다고 한다.
[현황]
1932년 보모 수는 5명, 학급 수는 3개 반이었으며, 원아 수는 남자가 51명, 여자가 50명이었다. 그리고 운영경비는 2,664원이었다.
1937년에는 학급수가 3개 반, 교원수는 7명이었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에 나라의 기둥인 어린이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세워진 진주유치원은 타 지역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 진주가 교육도시임을 보여 주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