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0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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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農民組合 |
영어의미역 | Jinju Farmers' Cooperative |
이칭/별칭 | 진주농민연맹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형목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있었던 농민 단체.
[개설]
진주는 삼남지방의 미곡 주산지였으나 고율의 소작료 등으로 소작인들은 만성적인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었다.
[설립목적]
고율의 소작료 인하와 소작인에 대한 부당한 조세부담 경감 등을 통한 농민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향상이 일차적인 목적이었다.
[설립경위]
진주지역의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주도한 진주노동공제회의 주도세력이 대거 검거됨으로써 1920년대 중반부터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1928년 2월 19일에 진주노동공제회 창립 6주년 기념식을 거행하는 등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되었으며, 제6회 정기총회에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의 진전을 위한 진주노동공제회 해체와 각각의 새로운 조직안이 가결되었고, 이는 1928년 2월 20일 가칭 진주농민연맹 창립으로 이어졌다.
[변천]
1928년 2월 20일 조직된 진주농민연맹은 이후 조선농민총연맹에 의하여 진주농민조합으로 정식 명명되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문맹퇴치를 위한 순회강좌 개최, 봉건적 악습타파를 위한 계몽운동 등이 주요사업이었다. 또한 시대변화에 부응하려는 노력의 일환에서 노동야학과 사설강습소 등을 운영하였다. 농촌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위원 파견도 중요한 업무였다. 더불어 악덕지주를 규탄하는 농민대회를 개최하는 등 사회적인 영향력을 배가시켰다.
[활동사항]
미조직 대중을 확보하기 위한 회원 배가운동이 주요한 활동영역이었다. 소작관행에 대한 조사와 현지에서의 간부들 지도는 진주노동조합의 지지 기반을 확충하는 밑거름이나 다름없었다. 혁명적 농민운동과의 연계도 도모하였다. 또한 진주농민조합을 혁명적 농민조합으로 재편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특히 한영준·조우제·김장환·강대창 등은 진주노동조합과 함께 소비조합을 운영하는 등 공동구매·공동판매 등을 통한 농민들 복지에 노력하였다.
[현황]
현재 진주농민조합의 사무실이 있었던 장소에서는 관련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조직]
서무부, 경리부, 교육부, 조직부, 조사부, 쟁의부, 공제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