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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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第三夜學校 |
영어의미역 | Third Jinju Night School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판근 |
성격 | 야학|교육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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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연도/일시 | 1923년 |
해체연도/일시 | 1943년 |
설립자 | 권홍우(權烘宇)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있었던 교육 단체.
[설립목적]
지역민의 문맹퇴치와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등 민족교육에 그 목적을 두었으며, 일제강점기에 20여 년 동안 민족교육의 역할을 담당한 야학교이다.
[설립경위]
1923년 권홍우(權烘宇)가 어린이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사재를 털어 야학교(당시 제3야학회)를 세우게 되었다.
[변천]
20년 동안 교육에 전념해 오던 진주 제3야학교는 1940년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인하여 1943년 18회 졸업생을 끝으로 폐교되었다.
[중점교육사항]
교육과정은 보통학교의 초등교육과 비슷했으며, 일본어 교육보다는 조선어 교육에 주력하면서 우리나라의 역사도 함께 가르쳤다. 교육연한은 4년이었다.
[활동사항]
1925년 1월 4일 신년음악회, 1931년 10월 7일과 1933년 추석 무렵 학예회 등을 개최하였다.
[현황]
진주 제3야학교는 설립 당시 진주초등학교(晉州初等學校) 뒤 주택가의 3칸 목조건물이 전부였으나, 학생수가 늘어나자 교실 1칸과 교무실을 마련하고 출입구에 무쇠 종을 달아 학교의 모습을 갖추었다. 1936년 3월 30일 신입생 모집정원이 80명으로 진주지역의 야학교 중에서는 가장 많았다. 1931년부터 사업가 정상진(鄭相珍)이 매월 10원씩 보조금(補助金)을 후원(後援)하였다.
[의의와 평가]
진주 제3야학교는 일제의 문화통치기를 거쳐 민족말살통치기에 지역의 민족교육을 위하여 수많은 고난을 겪은 교육기관이다. 일제에 항거하며 민족의 정신을 지키고자 한 이들 야학정신은 오늘날에도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