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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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永禧 |
영어음역 | No Yeonghu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병인 |
[정의]
고려 후기의 무신.
[활동사항]
1270년(원종 11) 원종이 몽고와의 화평 교섭에 의하여 출륙환도(出陸還都)를 결정하고 삼별초의 명단을 압수하였다. 이때 노영희는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로서 배중손과 함께 궐기하였다.
이들은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옹립하고 관부를 설치하여 반몽고, 반개경정부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항전을 위하여 근거지를 강화도에서 진도로 옮겼다. 진도에 근거지를 둔 삼별초는 한때 경상도와 전라도의 연안 지방을 석권하는 등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1271년(원종 12) 5월 여몽연합군에 의하여 진도의 삼별초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에 잔여 세력은 김통정(金通精)의 인솔 하에 제주도로 들어가 계속 항전하였다.
노영희가 진도에서의 대몽항전, 제주도에서의 대몽항전 시기 중 언제 전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노영희가 ‘오랑(五狼)’ 중 1인으로 꼽히는 것으로 보아 삼별초가 진도에 근거지를 두고 있을 때 두드러진 활약을 한 인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삼별초를 진압하려 했던 여몽연합군은 ‘오랑(五狼)’이라 하여 진도 정부 시절 삼별초의 주동 인물을 왕오·배중손·유존섭·김통정·노영희로 지목하였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노영희는 배중손·김통정과 더불어 삼별초의 대표적인 대몽항전론자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