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269 |
---|---|
한자 | 龍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용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인철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화순군 내남면 용리 개설 |
---|---|
변천 시기/일시 | 1932년 - 전라남도 화순군 내남면 용리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용리로 편입 |
전구간 | 용리 -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용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2.10㎢ |
가구수 | 74가구 |
인구[남,여] | 137명[남자 68명, 여자 69명]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화순군 남면 용리는 원래 주평(舟坪)·용안(龍安)·매구정(埋龜亭)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매구정 마을은 인구가 감소하여 마을세가 약화되었다.
[명칭 유래]
용리의 지명은 용안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지어졌다. 주평 마을은 배 나들이라 하여 동복천에 배가 드나들던 곳으로, 나룻터나 선착장의 의미를 갖고 있다. ‘배 나들이’에서 배 주(舟)자와 들 평(坪)자를 각각 취하여 한자로 주평이라 한다.
매구정 마을은 거북이가 산에서 내려오다가 앞에 나타난 독수리를 보고 깜짝 놀라 엎드린 형국이다. 용안 마을은 산등[용]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 산등 안쪽에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에 용안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동복현(同福縣) 내남면(內南面), 1867년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동복현 내남면으로 기록되어 있다.1895년(고종 32)에는 면·결·호수의 다소(多少)에 따라 각 군의 등급을 정하면서 나주부(羅州府) 동복군(同福郡) 내남면이 되었고, 1896년(고종 33)에는 13도 실시에 따라 전라남도 동복군 내남면이 되었다.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동복군 내남면 주평리(舟坪里)로 기록되었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이 되면서 화순군 내남면 용리[용안리·주평리 일부]로 개편되었다. 1932년에는 행정 구역 개편이 되면서 화순군 남면 용리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용리는 화순군 남면 북쪽에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다가 서쪽으로 흘러가는 동복천이 중앙을 관통한다.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는 지방도 822호선이 관통한다.
주평 마을의 동쪽은 똥메·돛대 바위·큰 굴·묵은 밭이 있고 서쪽에는 새보들·소정이·동복천이 있다. 남쪽에는 중목보·봉황대 터가 있고, 북쪽에는 매구쟁이가 있다. 매구정 마을 동쪽에는 다산리 다공 마을이 있고, 서쪽에는 용리가 있으며, 남쪽의 주평 마을과 북쪽의 내리 신암 마을이 있다.
용안 마을의 동쪽에는 토끼봉이 있고, 동남쪽에는 숭어등, 서쪽의 잔지등과 남쪽의 수리봉, 북쪽의 뒷산이 있다. 마을의 동쪽에는 주평 마을, 서쪽의 장전리 오룡 마을, 남쪽의 장전리 장전 마을과 북쪽의 내리가 있다.
[현황]
용리는 2012년 현재 1구의 주평 마을과 매구정 마을과 2구의 용안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약 2.11㎢의 면적에 74가구가 거주하고 있고 인구는 137명이다. 남자는 68명[1구 21명, 2구 47명]이고 여자는 69명[1구 23명, 2구 46명]이다. 북쪽에는 연둔리, 남쪽의 절산리, 동쪽의 내리·다산리, 서쪽의 장전리와 인접하고 있다. 주산물과 주소득원은 벼이다. 유물 및 유적으로는 문화 유적은 봉황대(鳳凰臺), 동백나무[수령 400년], 호두나무[수령 130년], 윤계수 소장 고문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