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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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谷里 |
영어공식명칭 | Ung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해평마을·은행마을·운곡마을·옥환마을을 병합하여 운곡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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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남도 안의군 서하면에서 함양군 서하면으로 편입 |
운곡리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 |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164가구 |
인구[남/여] | 313명[남 155 명|여 158명]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雲谷里)는 해평(海坪)마을, 은행(銀杏)마을, 운곡마을(雲谷)[마조동], 옥환(玉環)[옥고리터]마을을 병합하면서 백운산 동쪽 골짜기에 있고, 대표적 마을인 운곡마을의 이름을 따서 운곡리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상남도 안의군 서하면에서 함양군 서하면에 편입되면서 해평·은행·운곡·옥환마을을 병합하여 운곡리로 개칭하였다.
해평마을은 마을 앞에 하천과 들이 넓어서 붙은 이름으로, 굴어(屈魚)촌이라고도 하였다. 파주염씨가 이곳으로 들어와 집성촌을 이루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은행마을은 800여 년 전 개장천변에 살던 마씨가 천재지변으로 인해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후 해주오씨가 들어오고 김해김씨가 들어와 큰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운곡마을은 조선 숙종 말엽 성산도씨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여 농경지를 일구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리점이라 하다가 지금의 철공소에 해당하는 퉁점을 마곡의 개천가에 세웠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마조촌이라 고쳐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백운산의 골짜기에 있다고 하여 운곡이라 개칭되었다. 옥환마을은 고려 말경 분성배씨가 진주에서, 청주한씨가 충청도에서 이곳으로 와 마을을 개척하여 농경지를 일구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근처 산에 옥고리 명당터가 있다 하여 옥고리터라 하였으며, 한자화되면서 옥환이 된 것이라 한다.
[자연환경]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는 대봉산[1,245.8m]의 북서사면과 백운산[1,278.8m]의 동쪽 사면 사이에 있는 깊고 넓은 골짜기이다. 두 산지에서 발원한 하천들이 운곡리의 가운데로 모여들어 송계천을 이루고 북동쪽으로 흘러 송계리의 송계마을 앞에서 남강으로 합류한다. 송계천의 남서쪽 상류에서 북동쪽 하류로 갈수록 침식되는 골짜기가 넓어져 침식분지를 이루고 있다.
[현황]
운곡리는 함양군 서하면의 서남쪽에 있으며 해평·은행·운곡·옥환 등 4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2018년 8월 말 기준으로 운곡리의 인구 현황을 살펴보면 해평마을에는 38가구에 70명[남자 31명, 여자 39명]이, 은행마을에는 45가구에 91명[남자 46명, 여자 45명]이, 운곡마을에는 57가구에 110명[남자 52명, 여자 58명]이, 옥환마을에는 24가구에 42명[남자 26명, 여자 16명]이 거주하여 총 173가구에 313명[남자 155명, 여자 158명]이 살고 있다.
운곡리의 주요 농특산품은 사과, 곶감, 담배, 고랭지채소, 한우 등이다. 운곡리에는 천연기념물 제406호로 지정된 수령이 약 1,000년으로 추정되는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가 있다. 운곡리 남동쪽 대봉산의 봄철 철쭉꽃 또한 유명하다. 지방도 37호선인 함양남서로가 남서쪽 백전면에서 백운산 고개를 넘어 운곡리를 종단하듯 북쪽 송계리로 이어져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