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161 |
---|---|
한자 | 松溪里 |
영어공식명칭 | Songgye-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송계동과 거기동을 병합하여 송계리 개설 |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남도 안의군 서하면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으로 편입 |
송계리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 |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213가구 |
인구[남/여] | 386명[남 179명|여 207명]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松溪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계(松溪)마을과 거기(居起)마을을 병합하면서 대표 마을인 송계의 이름을 따서 송계리가 되었다. 송계마을은 두 그루 소나무 사이에 ‘송정’이라는 정각을 지으면서 양송정(兩松亭), 양송징이, 송정(松亭), 송계(松溪)라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송계동이 되었다. 신기(新基)마을은 송계마을 남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로 새터라 불리다가 1930년 송계에서 분동되어 신기마을이라 하였다. 거기마을은 마을 뒤 주화산의 계곡에 아름다운 꽃이 많이 피어나고 맑은 물이 흘러 화계촌(花溪村)이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거기(居起)로 개칭한 것이다.
[형성 및 변천]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의 대표 마을인 송계동은 1652년(조선 효종 3)경에 신평동에서 정선전씨가 옮겨와 정착하며 마을이 생겼다고 한다. 신기마을은 조선 영조 때 송계마을에서 정선전씨가 새로이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 마을이 새로 형성되었다. 거기마을은 조선 숙종 때 함양박씨가 처음 들어와 정착하였고 그 뒤로 신창맹씨가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계동·신기동·거기동을 병합하여 송계리로 개칭하고, 경상남도 안의군 서하면에서 함양군 서하면으로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는 거망산[1,184m]의 남서사면, 우락산[764.8m] 남사면에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의 거기마을은 북동쪽 거망산에서 발원한 하천들과 우락산에서 발원한 하천들이 합류하며 남서쪽으로 흐르면서 형성한 침식분지에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의 북서쪽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에서 남동쪽으로 흐르고 있는 남강, 거망산에서 발원하여 흘러드는 하천,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남쪽 대봉산과 서쪽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흐르고 있는 송계천이 송계마을 앞에서 합류한다. 송계마을 앞에서 남강이 크게 곡류하고 있으며, 송계마을은 곡류하는 남강의 보호 사면에 있다.
[현황]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는 서하면사무소가 있는 면 소재지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의 북서쪽에 있는 송계리는 북으로는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동으로는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남으로는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으로 통하는 길이 일찍부터 뚫려 있고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의 중심지적 역할을 하고 있어 서하우체국·서하면보건지소·서하치안센터·서하초등학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국도26호선인 육십령로와 광주대구고속도로가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 남동쪽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와 북서쪽의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송계마을에서 남서쪽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와 이어지는 지방도37호선인 함양남서로와 국도26호선인 육십령로가 결절(結節)[기능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2018년 8월 말 기준으로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의 송계마을에는 109가구에 197명[남자 96명, 여자 101명]이, 신기마을에는 42가구에 77명[남자 34명, 여자 43명]이, 거기마을에는 62가구에 112명[남자 49명, 여자 63명]이 살고 있어 총 213가구에 386명[남자 179명, 여자 207명]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