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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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Farmers´ Cooperative Group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집필자 | 이훈 |
[정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농사일을 공동 작업으로 수행하던 마을 단위의 조직.
[개설]
두레는 촌락이나 리(里) 단위에서 일을 함께 하기 위해 구성되는 노동 조직을 의미한다. 현재 공주 지역에는 두레가 완전히 소멸되어 몇 개의 두레가 활동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1960년대까지는 두레가 살아 있던 마을이 많았고, 공주시의 267개 행정리 가운데 838개가 자연마을을 이루고 살아왔으며, 20호 미만의 작은 마을이 아니면 모두 두레가 운영되었다.
[두레 있는 마을]
공주 지역 11개 읍면에 44개 행정리에서 활동한 두레의 수를 표본 조사한 결과, 1개 두레 15개 마을(34%), 2개 두레 18개 마을(41%), 3개 두레 9개 마을(20%), 4개 두레 2개 마을(4%)로 나타났다. 즉 44개 마을에 86개의 두레가 활동하여 1개 행정리 당 평균 1.95개의 두레가 해방 후 1960년대까지 존재했으니 공주시 관내에 적어도 5백 개가 넘는 두레가 활동하였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두레가 활동했다는 것은 전통의 농경사회였던 시기로 돌아가 본다면 공주인들의 삶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고 떼어놓아서도 안 되는 중요한 생활 민속으로 두레가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두레 없는 마을]
공주 지역에서 두레가 완전히 존재하지 않았다는 마을은 유구읍 신영리 여드니와 녹천리 두 마을 밖에 없었다. 유구읍 신영리 여드니는 양반들이 사는 기와집이 80여 채 있었던 마을로, 양반들이 풍장을 치는 것조차 금기시하여 두레를 세우지 못하였다. 녹천리는 해방 후 북에서 피난 나온 피난민들이 농토를 개간하여 이룬 개척 마을이라서 두레를 세우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여성의 품앗이]
공주 일원에서 보이는 여인들의 두레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공동 작업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개념이 아니다. 다만, 두레의 좌상이 여인네들의 작업 공동체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인들의 공동작업 조직은 존재했지만 본질적으로 두레와 성격이 다른 조직이었다는 말이다.
공주 일원에서 보이는 여인들의 품앗이 공동체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어느 마을에나 존재했던 길쌈 작업 중 명품앗이 공동체와 일부분의 마을에만 존재하는 밭매기 품앗이가 있어서 집집마다 돌아가며 공동 작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공동체는 구성되어 있었으나 이를 운영하는 조직이 없어 협의와 관행에 따라 운영되는 단순한 품앗이 성격이 강하였다. 따라서 여인들의 두레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