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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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가. 김재명(金在明)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에서 태어났다. 영학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1899년 4월 28일 흥덕 주재 광주지방대 사령관에게 이첩되었다. 형량은 밝혀져 있지 않다. 영학당 사건은 동학농민혁명 후 1898년(고종 35) 12월 흥덕에서 일어나 이듬해 6월까지 흥덕, 고창, 고부, 무장 지방에 번졌던 농민 항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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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가. 송민수(宋敏洙)는 지금의 고창군 흥덕면 하남리에서 살았으며, 북면 훈임(訓任)으로 신망을 받았다. 이화삼의 제의를 받고 1898년 12월 영학당 흥덕농민봉기를 주도하였다. 12월 27일 밤 이화삼과 함께 당시 북면 중남당리·외남당리·하남당리, 동면 산양리·관정리·생근리 등 5~6개 마을 농민 300여 명을 거느리고 일어나 28일 흥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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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북도 고창군의 역사. 고창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36, 잡지 제5 무량군편에서 “백제의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을 신라 경덕왕 때 고창현(高敞縣)으로 고쳐 불렀다.”는 기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현재의 고창군은 신라 때에 고창현으로 무령군이 관할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고부군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고창현이 되었고, 조선 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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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1899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 지역과 정읍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농민 항쟁을 지도했던 농민 조직. 영학당은 1898년 12월 28일~30일까지 진행된 흥덕농민봉기, 1899년 3월에 일어난 전주농민봉기, 1899년 5월 전주·고부·흥덕·태인·정읍·무장 등지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을 주도하였다. 갑오농민전쟁기의 집강소 조직과 을미의병의 실질적인 전투력이었던 포군 조직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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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흥덕 농민 봉기 지도자. 이화삼은 젊은 시절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살면서, 농업 기술을 전수하고 농민 계몽 등을 위해 만들어진 계모임과 같은 상호 부조적인 농민 조직 영학당을 이끌고 있었다. 1898년 이화삼은 이웃 마을 송관오의 장례식에 갔다가 여러 사람으로부터 흥덕군수의 탐학에 군민의 원성이 높은 것을 알고, 이웃 외남당리 송민수(宋敏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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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군. 이화서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후포리에서 태어났다. 1898년 12월 이화삼(李化三)이 중심이 되어 일으켰던 흥덕 농민 봉기가 실패한 후, 이듬해 1899년 4월 최익서(崔益瑞)가 중심이 되어 정읍에서 재차 봉기가 일어났는데, 이것을 영학당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정읍의 입암면 왕심리에서 ‘벌외벌양(伐外伐洋)’을 표방하고 고부관아를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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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가. 최치홍(崔致洪)은 지금의 고창군 부안면 중흥리에서 태어났다. 영학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1899년(고종 36) 4월 28일 흥덕 주재 광주지방대 사령관에게 이첩되었다. 영학당 사건은 동학 농민 혁명 후 1898년(고종 35) 12월 흥덕에서 일어나 이듬해 6월까지 흥덕, 고창, 고부, 무장 지방에 번졌던 농민 항쟁을 말한다. 18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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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12월 고창 지역에서 흥덕군수의 탐학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 운동. 동학 농민 혁명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1898년(고종 35) 지방 수령의 수탈 행위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안으로는 봉건 정부의 수탈과 밖으로는 외세 침략에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영학당을 조직하였다. 영학당은 동학 남접 세력으로 동학 농민 혁명의 상처가 남기고 간 잔여 세력이자 국가의 운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