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765
한자 安民生
영어공식명칭 An MinSea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1년연표보기 - 안민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4년 - 안민생 중국에서 소학교 교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60년 5월 - 안민생 민주구국동지회 조직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60년 10월 - 안민생 경북시국대책위원회 결성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60년 11월 - 안민생 민족통일경북연맹 총무위원회 기획부장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62년 1월 9일 - 안민생 군사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0년형 언도
출생지 청계리 - 황해도 신천군 평라면 청계리
거주|이주지 중국 - 중국
거주|이주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중국 - 중국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민족통일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민족통일경북연맹 총무위원회 기획부장

[정의]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통일운동가

[개설]

안민생(安民生)[1911~?]은 1911년 황해도 신천군 평라면 청계리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한인 소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광복 후 대구에 거주하며 자주적 남북통일운동과 이대악법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안민생은 1960년 4·19혁명 직후 대구에서 삼촌 안경근(安敬根)과 함께 민주구국동지회를 결성하고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0월에는 경북시국대책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11월 12일 경북시국대책위원회대구종로초등학교에서 개최한 통일문제시국대강연회에 참석하였다. 3,000여 명이 통일문제시국대강연회에서 중립화 통일 방안이 제기되었다.

안민생은 1960년 11월 26일 경북시국대책위원회를 확대 개편하여 결성한 경북민족통일연맹[민족통일경북연맹]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총무위원회 기획부장이 되었다. 경북민족통일연맹 결성대회에서는 남북 간 서신 왕래의 자유, 경제적 교류, 문화 교류 등의 통일 전 남북 교류의 필요성을 내용으로 하는 결의문과 선전문이 채택되었다.

안민생은 1961년 2월 25일 경북민족통일연맹 상임집행위원회에 참석하여 3·1운동 기념일을 맞아 달성공원에서 ‘3·1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일 달성공원에서 3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3·1 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에서는 남북 교류, 평화통일이 제기되었다. 안민생은 대회 후 참가자들과 함께 현수막과 차량을 앞세우고 달성공원을 나와 북성로중앙통을 거쳐 반월당까지 “통일만이 살길이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선전물을 뿌리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3월 21일 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이대악법반대시민궐기대회와 4월 7일 수성천 변에서 열린 이대악법반대규탄대회에도 참석하였다. 안민생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체포되어 1962년 1월 9일 군사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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