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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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山新甘里大山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신감리 산23임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안성현 |
현 소재지 | 마산 신감리 대산산성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신감리 산23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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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석축 산성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신감리 일대에 있는 테뫼식 석축 산성.
[개설]
마산 신감리 대산산성은 문헌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성으로 고고학 조사는 경남 대학교에서 발간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마산시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지표 조사가 유일하다. 창원시 고대 성곽들의 성격을 파악하는 글에서 대산산성을 부분적으로 다루었을 뿐이다. 대산산성의 정확한 축조 시기와 축조 목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현재 대산산성에는 잡목이 우거져 있으며, 성벽은 대부분 붕괴, 훼손되어 그 원형을 알 수 없다. 성의 잔해들을 통해 산성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위치]
마산 신감리 대산산성은 진동면과 진북면, 내서읍의 경계를 이루는 대산[727m]에서 북쪽인 내서읍으로 내려오는 지맥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산성의 남서쪽으로 대산이 위치하므로 서쪽과 남쪽의 조망권은 불량한 반면 북쪽과 동쪽의 내서와 마산을 잇는 교통로의 조망권은 상당히 양호하다. 산성의 입지를 보아 함안이나 내서 방향에서 진입하는 적을 감시하기 위하여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변천]
대산산성은 문헌에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와 목적을 알 수 없다. 다만 산성의 위치나 형태, 축조 수법 등을 통해 대략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대산산성은 산 정상부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지맥 정상부의 8~9부 능선에 위치한다. 경상남도 지역의 성곽들은 시기에 따라 방어의 주체가 달라짐으로써 입지도 변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에 복속되기 이전에는 주변의 가야 제소국을 방어하기 위하여, 신라에 복속된 이후에는 백제와 왜를 방어하기 위한 축성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삼국이 통일된 이후에는 왜구 방어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러한 축성은 조선 시대 후기까지 이어진다. 대산산성의 입지는 마산이 아니라 내륙에 위치한 함안이나 내서에서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산성의 축조 시기가 신라에 복속되기 이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대산산성의 규모는 50m 정도로 알려져 있다. 경상남도 지역 신라 산성 중 가장 소형에 해당하는 진해 구산성이 350m 정도임을 감안할 때 일반적인 성곽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대산산성 주변에 대형 산성이 위치하지 않으므로 대산산성이 비록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다른 산성에 부속된 보루와 같은 성격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성곽의 기능을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50m 정도의 규모로도 성곽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소규모 병력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되었으므로 축조 시기가 상당히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셋째, 대산산성의 성벽은 할석[깬 돌]으로 허튼층쌓기를 하였다. 일반적으로 신라의 거의 모든 석축 산성들은 바른층쌓기 방식을 채택했고, 그 이후에는 할석으로 허튼층쌓기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산산성 성벽의 축조 수법으로 보아 신라가 축성했다고는 보기는 힘들고, 가야 혹은 고려 및 조선 시대에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넷째, 대산산성의 성문은 개거식인데, 이는 현문식인 신라와는 차이를 보인다.
다섯째, 대산산성 내부에는 암괴가 노출된 상태로 확인되므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협소하다. 장기간의 농성은 불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신라나 백제 및 고려 시대 이후의 성곽과는 차이를 보일 뿐 아니라 다른 지역 산성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대산산성은 신라에 복속되기 이전 가야의 제소국 중 한 곳이 축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내부에서 유물이 채집되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와 사용 기간은 알 수 없으나 단기간 사용되다가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형태]
마산 신감리 대산산성은 대산의 북쪽으로 내려오는 지맥 정상의 8~9부 능선을 두른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현황]
현재 산성 내부와 주변에 잡목이 우거져 있으며, 성 내부 곳곳에 자연 암반이 돌출되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협소하다. 산성의 부속 시설로는 성벽과 성문 1개가 확인된다. 성벽은 자연 암반을 정지한 후 기저부를 조성한 것으로 보이며 그 위에 20~80㎝ 내외의 할석으로 허튼층쌓기를 하였다. 현재 확인되는 성벽의 잔존 높이는 6~8단 200㎝ 정도이다. 성문은 개거식으로 양쪽에서 이어져오다 ‘ㄱ’자 모양으로 꺾여 성 안쪽의 경사면을 따라 쭉 이어진다.
[의의와 평가]
대산산성의 정확한 축조 시기나 목적은 파악할 수 없으나 산성의 특징으로 보아 가야의 산성일 가능성이 높다. 대산산성에 대한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보다 명확한 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