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4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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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山鳳谷里褒烈閣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봉곡리 519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태성 |
현 소재지 | 마산 봉곡리 포열각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봉곡리 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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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정려각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정려각.
[개설]
포열각은 이동신의 처 삭녕 최씨의 열행을 기리는 정려이다. 포열각 내에는 ‘학생 이동신지처 열녀 삭녕 최씨 려(學生李東新之妻烈女朔寧崔氏閭)’를 표한 정려문과 ‘삭녕 최씨 정려 사수기(朔寧崔氏旌閭四修記)’, ‘열녀 최씨 정려 실기(烈女崔氏旌閭實記)’가 있다.
‘처사 공동신처 삭령 최씨 정려기(處士公東新妻朔寧崔氏旌閭記)’의 내용을 보면 처사 이동신은 성산 부원군 문열공 이조년의 13세손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좌랑을 지낸 이일장의 증손자이다. 1654년에 이동신이 병을 얻어 백약이 무효하게 되자 그 처 최씨가 밤낮으로 천지에 빌고 빌어 대신하기를 청하니 마침내 차도가 있어 8개월을 더 연명하였다고 한다. 병이 다시 재발하자 온갖 정성을 다하였으나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신을 거두어 염습하고 장례를 치름에 조금도 예에 어긋남이 없었고, 6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가 돌아갔으니, 1719년에 나라에서 이 일을 알고 정려를 내리고 『삼강록』에 실었다고 한다.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합포구 진전면 봉곡리 519에 위치한다.
[변천]
과거에는 창원현의 서쪽 10리 곡안 봉대 우측 산기슭에 있었다고 하나 몇 번의 전란과 난리를 겪는 동안 정려는 다 타버렸고 문헌도 모두 사라졌다. 이후 두어 번의 보수가 있었으나 완전하지 않았고, 방손인 이필화가 마을 앞으로 옮겨 다시 지었다. 이후 이필화의 재종숙인 이형렬이 대암 아래의 길지를 잡아 세 번째로 자리를 옮겼다.
[형태]
포열각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고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지대는 시멘트로 되어 있으며 원형의 초석 위에 기둥을 세웠다. 주위는 쇠창살을 둘러 보호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후기에 열행을 장려했던 흔적으로서 당시의 윤리적 지향과 국가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