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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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속하는 법정리. ‘가증리(佳增里)’ 명칭은 조선 후기부터 불린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 『호구총수(戶口總數)』 등에 몽도면 소속으로 한자를 달리하여 가증리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증리는 부여군 몽도면의 동남쪽으로부터 가증리의 중심을 지나 서남쪽으로 흘러서 금강으로 합류하는 냇물인 가징개 옆에 있기 때문에 ‘가징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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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상금리에서 발원하여 송곡리, 가증리를 거쳐 쌍북리에서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가증천은 부여군 몽도면[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의 중심을 뚫고 서남쪽으로 흐르는 천이며, 금강으로 합류한다. 가증천은 ‘가징개’ 또는 ‘가증’, ‘광지포(光之浦)’라고 불렀는데, 정확한 명칭 유래는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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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의 특수 행정 구역. 고려 시대에는 일반적인 행정 구역인 군현과 함께 지방의 특수한 행정 구역인 향·부곡·소와 장(莊)·처(處)가 있었는데, 장·처는 고려 말까지 존속되다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대부분 폐지되거나 일반 군현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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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 월명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금지사(金池寺)는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과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 경계에 있으며, 높이는 544m이다.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 월명산 정상 부근 남쪽 9부 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암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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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부여 출신의 효자. 김운신(金運新)[?~?]은 부여 출신의 효자로 이름났으나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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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대선리와 홍산면 남촌리 사이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남면 신교비(南面 薪橋碑)는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과 홍산면 사이의 삽교 입구에 있는 비석이다. 『여지도서』에는 홍산면에서 남면으로 이어지는 곳에 신교(薪橋)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섶다리’ 혹은 ‘삽다리’라고 불렀다. 남면 신교비는 다리의 건립과 관련하여 세워진 비석으로 ‘삽다리비’라고도 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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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과 보령시 미산면·성주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 전설에 의하면 한 승려가 홍산과 남포 사이에 만인이 살 곳이라 해서 만수산(萬壽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홍성현’에는 “현 북쪽 47리[18.5㎞]에 있다”고 전하며, 『여지도서(輿地圖書)』 ‘홍성현’에는 “현 관아 북쪽 37리[14.5㎞]에 있다. 홍산 성태산(星台山)에서 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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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박용급(朴用汲)[?~?]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석성현[현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출신의 효자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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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부여 지역의 열녀. 경주 이씨(慶州 李氏)[?~?]의 남편은 의흥위(義興衛)의 갑사(甲士)를 지낸 박원형(朴元亨)이다. 박원형의 처 경주 이씨는 부여에 살며 평소 남편을 지극히 섬겼는데, 어느 날 남편이 심한 병에 걸리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약에 타서 먹여 낫게 하였다고 한다. 경주 이씨의 행적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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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에서 부여 읍내에 이르는 길목에 있는 고개. 백야치(白也峙)는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석성현 산천 조에 “현 서북쪽 6리[약 2.3㎞]의 망월산 아래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海東地圖)』를 보면 읍치 북쪽에 용머리산과 국사봉이 있어 읍치의 진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동쪽에는 태조산-망월산-봉황산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좌청룡의 역할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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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규암마을의 이야기. 규암마을은 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부여읍을 마주한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에 있다. 부여의 진산에 해당하는 부소산을 돌아 구드래나루를 지나는 물줄기가 부여읍과 규암면을 가른다. 서쪽으로 가로 놓여 있는 백제교를 건너면 자온대를 지나 규암마을에 이른다. 이러한 백마강과 자온대에 다하여 이중환은 다음과 같이 썼다.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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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산. 부산(浮山)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높이 106m의 산이다. 부산은 오산(吳山), 일산(日山)과 함께 삼영산(三靈山)으로 불려 왔다. 한편, 신성한 의미를 지닌 삼산의 개념은 백제가 수도를 사비로 옮긴 성왕 대에 성립되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삼국유사(三國遺事)』「남부여 전백제 북부여(南扶餘 前百濟 北扶餘)」 조에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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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는 산. 부소산(扶蘇山)은 부여읍의 북쪽에 해당하는 진산이며, 높이는 106m이다. 금강의 하류에 해당하는 백마강과 맞닿아 있다. 백제 시대에는 부소산을 중심으로 왕성이 설치되어 백제가 사비[현 부여]로 천도하였을 때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도 통일 신라, 조선까지 행정 치소의 역할을 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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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개항기 부여현 관아의 객사. 부여 객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개항기 부여현의 관아 건물이다. 각종 의례를 행하거나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이 지방에 머물 때 사용하던 숙소였다. 부여 객사는 ‘부풍관(扶風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현재는 ‘백제관(百濟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객사 내부에는 1880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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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개항기 부여현 관아의 내동헌. 부여 내동헌(扶餘 內東軒)는 개항기 부여현 관아의 중심적인 건물로 현감과 가족의 거주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여지도서』에 동헌을 포함한 아사(衙舍) 51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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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홍산현 관아 건물. 부여 홍산현 관아는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홍산현의 관아 건물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공해조에 따르면 객사 15칸과 아사 38칸, 관청 10칸과 현사 3칸 등의 건물 이름과 크기가 각각 기록되어 있다. 부여 홍산현 관아 시설 중 현재 홍산객사[충청남도 유형문화재]와 홍산동헌[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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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개항기 관아. 부여동헌(扶餘東軒)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개항기 부여현의 관아 건물이다. 동헌·객사·내동헌이 남아 있으며 부여동헌은 중심적인 건물로 수령의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초연당(超然堂)’ 또는 ‘제민헌(濟民軒)’으로도 불렸다. 부여동헌은 1869년(고종 6) 재건되었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내동헌를 포함한 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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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살펴보면 부여현은 옛 백제의 도읍으로 조룡대(釣龍臺)·낙화암(落花巖)·자온대(自溫臺)·고란사(皐蘭寺)와 같은 백제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었다. 『택리지』에서는 부여의 지역적 특징으로 경치가 매우 훌륭하며, 땅이 기름져 부유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다만 도읍으로는 지대가 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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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편찬된 충청도 부여현의 읍지. 『부여현읍지(扶餘縣邑誌)』는 충청도 부여현의 연혁, 인문 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지방지이다. 편찬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부여현읍지』[규10765], 『부여현읍지』[규17376] 2책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부여현읍지』[규10765]는 영조(英祖)[1694~1776] 시기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고, 『부여현읍지』[규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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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여 지역의 효자. 서공(徐恭)[1101~1171]의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거란군을 물리치고 태보내사령(太保內史令)을 지낸 서희(徐熙)의 고손자이다. 아버지는 검교호부상서 판장작감사(檢校戶部尙書 判將作監事) 서균(徐鈞)이고, 어머니는 검교예부시랑 급사중(檢校禮部侍郞 給事中) 이당감(李唐鑑)의 딸 창화군대부인 이씨(昌化郡大夫人 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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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성현 관아의 동헌. 석성동헌(石城東軒)은 조선 시대 석성현 관아의 중심적인 건물로 수령의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4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1987년 8월 3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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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성현 관아의 동헌. 석성동헌(石城東軒)은 조선 시대 석성현 관아의 중심적인 건물로 수령의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4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1987년 8월 3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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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경 편찬된 충청도 석성현의 읍지. 『석성읍지(石城邑誌)』는 충청도 석성현[현 부여군 석성면]에서 파악한 전결(田結)·호구수(戶口數)·전세(田稅)·대동(大同) 등에 대한 내용을 수록하여 편찬한 지방지이다. 읍지의 편찬 시기는 1786년경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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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석성현은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지역에 설치되었다. 석성현은 백제 때 진악산현(珍惡山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이후 757년 신라 경덕왕 때 석산현(石山縣)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부여군의 속현이었다. 고려 초 940년 석성현(石城縣)으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부터 공주에 예속되었다. 1172년(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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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과 청양군 남양면·보령시 청라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 성태산(星台山)은 부여군 외산면 수신리와 청양군 남양면, 보령시 청라면의 경계를 이루는 631m의 산이다. 차령산맥이 이어지는 비교적 높은 산지에 속하며, 부여군 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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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와 장암면 지토리에 걸쳐 있는 산. 성흥산(聖興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현 동쪽 26리[10㎞]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관아의 동쪽 26리에 있다. 홍산현 월명산(月明山)에서 뻗어 나와 아미산의 으뜸이 되는 줄기가 된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백제 동성왕 때 쌓은 성흥산성이 있어 ‘성흥산’이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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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에서 숭어 등을 잡으려고 설치하던 전통 어로 도구. 어살은 싸리나 참대 따위를 날개 모양으로 둘러치거나 꽂아 울타리를 치고 그물이나 발을 엮거나 통발 같은 장치를 설치하여 안에 들어온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여 잡는 전통 어로 도구, 또는 그러한 어로 방식을 말한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전통어로방식-어살’로 지정되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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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실린 충청도 부여현의 읍지. 『여지도서(輿地圖書)』 부여현(扶餘縣)은 18세기 중엽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成冊)한 『여지도서』에 수록된 충청도 부여현의 읍지이다. 『여지도서』는 270여 년 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1486]을 기초로 하였으며, 호구(戶口)는 1759년 기묘장적(己卯帳籍)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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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 외산면 가덕리와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 월명산(月明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홍산현’에 “현 북쪽 9리[3.5㎞]에 있다”라고 되어 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 ‘홍산현’에 “관아의 북쪽 9리에 있다. 아미산에서 뻗어 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월명산은 『산경표(山經表)』에 따르면 금북정맥의 기맥(岐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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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윤덕(閏德)[?~?]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으며, 이순립(李順立)과 혼인한 뒤에는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정성으로 보살폈다. 스무 살 때 남편 이순립이 사망하자 지극히 슬퍼하며 장례를 치렀고, 목욕재계한 후 남편의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 이후 윤덕의 시신을 수습해 둔 곳에서 흰 기운 한 줄기가 위로 뻗쳐 하늘까지 닿았고, 사람들이 그러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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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연혁, 지리, 인물, 산업, 문화, 풍속 따위를 기록한 책. 부여군 지역을 소개하는 읍지는 『삼국사기(三國史記)』[1145]로부터 시작된다. 『삼국사기』 지리지를 보면 가림군(加林郡) 조와 부여군(扶餘郡) 조에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 가림군과 부여군 지리 정보가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고려 시대의 경우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정보가 담겨져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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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효자. 이덕린(李德麟)[?~?]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금곡(金谷)이다. 의안군(義安君) 이화(李和)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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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에 있는 고개.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비당면과 증산면의 주변에 이현(梨峴)과 전동치(戰洞峙) 등의 고개가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또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석성현 도로 조에는 동이현로가 보이는데, 관문에서 이현까지, 이현에서 수탕교까지 이르러 현재 부여군 초촌면 일부와 논산시 북부에 해당하는 노성군으로 향하는 길로 동이현로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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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지역에 있었던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살펴보면 임천군은 성주산(聖住山) 남쪽에 위치한 고을로 서천(舒川)·한산(韓山)과 함께 모시를 가꾸기 알맞은 곳이며 모시가 지역의 특산물로서 전국에서 제일인 지역이라고 하였다. 또한 강과 바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며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와 인접한 곳이라고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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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임천군 관아 터. 임천군관아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임천군 관아가 있었던 터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04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임천군 관아의 건물 현황은 『여지도서(輿地圖書)』 공해(公條) 조에 객사 28칸, 사후청(伺候廳) 3칸, 내아사(內衙舍) 9칸, 봉우헌(奉憂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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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수북정 아래에 있는 바위. 자온대(自溫臺)는 백제 무왕이 왕흥사(王興寺)에 예불을 하러 가기 전에 먼저 부처를 바라보고 절을 하였던 곳으로 전해지는 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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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태조산 중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정각사(正覺寺)는 창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처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조선 후기에 승도 10명이 있을 정도로 규모도 제법 큰 사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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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정천세(鄭千世)[1609~1619]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행충무위사과 정희영(鄭希永)이고, 할아버지는 사천현감을 지낸 정득열(鄭得說)이다. 아버지는 정택뢰(鄭澤雷)이고, 어머니는 정사경(鄭思敬)의 딸 동래 정씨(東萊 鄭氏)이다. 동생은 정만세(鄭晩世)·정계세(鄭繼世)·정수세(鄭壽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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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동래 정씨(東萊 鄭氏)의 아버지는 정사경(鄭思敬)이다. 사천현감을 지낸 정득열(鄭得說)의 아들 정택뢰(鄭澤雷)[1585~1619]와 혼인하여 하동 정씨(河東 鄭氏) 집안으로 출가하였다. 아들은 정천세(鄭千世)·정만세(鄭晩世)·정계세(鄭繼世)·정수세(鄭壽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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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청주 한씨(淸州 韓氏)[1635~1673]의 아버지는 장령을 지낸 한진(韓縝)이고, 어머니는 이두망(李斗望)의 딸 광주 이씨(光州 李氏)이다. 동생은 사간을 지낸 한태동(韓泰東)이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가 외손녀이다. 청주 한씨는 좌랑 조인형(趙仁亨)의 아들 조귀중(趙貴中)[1634~1671]과 혼인하여 풍양 조씨(豐壤 趙氏) 문중으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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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 역사. 조선 시대(朝鮮 時代) 지방 행정 제도는 1413년(태종 13)에 8도 체제가 확립되었다. 각 도 아래에는 330여 개의 부·목·군·현이 설치되었으며, 각 읍격에 맞게 부윤·대도호부사·목사·도호부사·군수·현령·현감이 파견되었다. 충청도는 고려 시대에 양광도(楊廣道)였다가 8도 체제 정비 과정에서 충청도로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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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천보리와 홍산면 상천리에 걸쳐 있는 산. 천보산(天寶山)은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가물 때 기우제를 지내면 이 산으로부터 비구름이 밀려와 비가 내린다”고 하여 명칭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 ‘홍산현’에 “관아의 북쪽 13리[5㎞]에 있다. 거차산에서 뻗어 온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산경표(山經表)』의 금북정맥의 기맥(岐脈)에 해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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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증산리, 현내리에 걸쳐 있는 산. 태조봉(太祖峰)은 부여군 석성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석성현 주룡(主龍)의 태조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석성현’에 “관아의 북쪽 9리[3.5㎞]에 있다. 망월산 내룡(來龍)의 왼쪽 가지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태조봉은 백제의 태조가 놀러 왔던 곳”이라는 설명이 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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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 석성면 현내리·봉정리에 걸쳐 있는 산. 파진산(破陣山)은 『여지도서(輿地圖書)』 ‘석성현’에 ‘파진산(波鎭山)’으로 되어 있으며, “관아의 서쪽 4리[약 1.5㎞], 백야치 아래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경표(山經表)』에는 금남정맥에 속하는 산으로 수록되어 있다. 한편, 국사봉에서 용머리산을 거쳐 파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동쪽 자락은 옛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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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존재하였던 고려 시대의 특수 행정 구역. 향(鄕)과 부곡(部曲)은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에도 존재하였고, 소(所)는 고려 시대에 생겼다. 향과 부곡의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지었고 소의 주민들은 수공업이나 광업에 종사하며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나라에 바쳤다. 향·부곡·소의 주민들은 일반 양인들에 비하여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였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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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객사. 홍산객사(鴻山客舍)는 조선 시대 홍산현의 관아 건물로, 각종 의례를 행할 때나 외국 사신 혹은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이 머물 때 사용하던 숙소이다. 홍산객사는 ‘비홍관(飛鴻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안에 「객사기(客舍記)」가 있다. 조선 후기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15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홍산객사는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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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객사. 홍산객사(鴻山客舍)는 조선 시대 홍산현의 관아 건물로, 각종 의례를 행할 때나 외국 사신 혹은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이 머물 때 사용하던 숙소이다. 홍산객사는 ‘비홍관(飛鴻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안에 「객사기(客舍記)」가 있다. 조선 후기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15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홍산객사는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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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만덕교 건립을 기념하는 조선 후기의 비석. 홍산만덕교비(鴻山萬德橋碑)는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홍산천(鴻山川)에 만덕교(萬德橋)를 건립하면서 세운 비이다. '만덕(萬德)'은 만인에게 덕을 끼친다는 뜻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만덕교는 홍산현 객사(客舍) 앞에 있는 다리였다. 하천은 농지 정리 이후 현재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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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는 홍산현(鴻山縣)을 성주산(聖住山) 동편에 위치한 고을로 인근의 임천(林川)·정산(定山) 등과 함께 풍속이 비슷하며 여러 대에 걸쳐 거주한 사대부 집안이 많다고 설명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홍산현의 풍속에 대해서 문무를 숭상하며, 누에 치기에 힘쓴다고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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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효자. 황진(黃璡)[1634~1666]의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자는 군미(君美), 호는 아술당(蛾述堂)이다. 할아버지는 황신(黃愼)이고, 아버지는 의주부윤 황일호(黃一皓)[1588~1641]이다. 첫 번째 부인은 연안 김씨(延安 金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여산 송씨(礪山 宋氏)이다. 아들은 황하신(黃夏臣)·황하민(黃夏民)·황하필(黃夏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