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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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安鎭 |
영어공식명칭 | Buan_j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범호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 설치한 수군진.
[개설]
조선은 1397년(태조 6) 5월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를 혁파하고 ‘진(鎭)’을 설치한 후 첨절제사(僉節制使)를 배치하였다. 전라도에는 목포·조양·옥구·흥덕 4곳, 경상도에는 합포·강주·영해·동래 4곳, 충청도의 순성(蓴城)·남포(藍浦)·이산(伊山) 4곳, 황해도의 풍천(豊川)·옹진(瓮津) 2곳, 강원도의 삼척·간성 2곳 등 모두 15개 진이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후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흥덕읍성을 축성하고 흥덕진(興德鎭)을 설치하였다. 1417년(태종 17)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전라 병영을 광산현에서 강진현으로 옮기면서 목포진을 무장진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에 방어 지역의 중첩을 피하고자 기존의 흥덕진을 폐지하고 부안으로 진을 옮기게 되었다. 이로써 부안진(扶安鎭)은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수군 방어의 중추 지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1 전라도 전주부 부안현 조에, “… 태종 14년 갑오에 보안을 부령에 합치었다가, 다음 해 을미에 또 나누었고, 그해 8월에 다시 합쳤다가, 다음 해 병신 7월에 또 나누었고, 12월에 다시 합쳐서 부안현으로 고쳤으며, 다음 해 정유에 덕흥진을 혁파하여 본 현에 옮기고 부안이라 하여 병마사가 판현사를 겸임하게 하였다가 금상[세종] 5년 계묘에 예에 의하여 첨절제사로 하였다[… 太宗十四年甲午 以保安合于扶寧 明年乙未 又分之 其年八月 復合 又明年丙申七月 又分之 十二月 復合 改扶安縣. 翼年丁酉 罷德興鎭 移于本縣 稱扶安鎭 以兵馬使 兼判縣事. 今上五年癸卯 例僉節制使].”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4권 전라도 부안현 조에는 “부령현은 본래 백제 개화현(皆火縣)이었는데, 신라 때 부령[혹 계발(戒發)이라고도 칭한다]으로 고치어 고부군에 붙였고, 고려 때에도 그대로 붙여 두었다가 후에 감무를 두어 보안을 겸임하였다. 보안현은 본래 백제 흔량매현(欣良買縣)이었는데, 신라 때 희안(喜安)으로 고치어 고부군에 붙였고, 고려 때 보안으로 고치어 고부군에 그대로 붙여 두었다가, 후에 부령 감무로 겸임하게 하였으며, 신우 때에 두 현에 각각 감무를 두었다. 본조 태종 14년에 보안을 다시 부령에 합쳤고, 15년에 또 나누었다가 8월에 다시 합쳤으며, 다음 해 7월에 또 나누었다가 12월에 두 현을 또 합치어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익년(翌年)에 흥덕진을 파하여 본 현에 옮겨서 부안진이라고 부르고, 병마사(兵馬使)로서 판사(判事)를 겸하게 하였고, 세종 5년에 규례대로 고치어 첨절제사로 만들었다가 후에 현감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조선은 1466년(세조 12) 진관 체제[진관을 중심으로 한 지역 방위 체제]를 구축하였다. 수군 지휘 체계는 주진(主鎭)-거진(巨鎭)-진(鎭)으로 편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수군절도사[정3품]-첨절제사[종3품]-수군만호[종4품]의 체제를 이루었다. 첨절제사[약칭 첨사]는 수군절도사 휘하의 주요한 포구에 설치한 거진의 수장으로, 중요한 해안 지역의 독진(獨鎭)과 그 진관(鎭管)에 있으면서 인근 예하 제진의 수군만호를 거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