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152
한자 大竹里
영어공식명칭 Daeju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대죽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용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대죽리 개설
성격 법정리
면적 2.95㎢
가구수 151가구
인구[남/여] 244명[남 122명/여 122명]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본래 마을을 꽉 채우는 큰 대밭이 있어 죽종리(竹宗里)라 하였으나 대머리[대죽리(大竹里)]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대머리는 대마을→대말→대멀→대머리의 변음인 것으로 보인다.

쌍다리[쌍교리]는 대머리 가는정 옆, 응봉마을 남쪽에 있는데 예전에 마을 앞에 두 개의 다리, 즉 쌍다리[雙橋]가 있어서 ‘쌍교리’라고 불렀다. 『동여도(東輿圖)』에 보이는 백산평교(平橋)와 영원의 노교(蘆橋) 중간쯤 고부천 변에 표기된 쌍교가 바로 이 지점으로 추정된다. 아주 먼 옛날에는 동진강 하구에서 고부천을 거스르는 조수는 이곳 쌍교-가다리[蘆橋, 정읍시 영원면 앵성리]-눌제 밑까지 닿았다고 한다.

응봉마을의 매봉은 백산면에서는 백산(白山)[47.4m]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로 지형이 숲에 엎드린 꿩[伏雉穴]을 노리는 매의 형국이라 ‘응봉(鷹峰)’이라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마을의 지형이 물고기가 숲속에 숨어 있는 형국이라 ‘어은동(魚隱洞)’이라고도 불렀다.

국성마을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만 하더라도 마을 앞이 성으로 둘러싸여 국성(局城)이라 하였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라 ‘나라 국(國)’ 자를 쓰면 산세와 지세가 어울려 많은 학자가 나올 것이라고 하여 국성(國城)으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에는 고부군 거마면 지역이었다. 1895년(고종 32) 군현 개편 때 대죽리로 바뀌었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거마면의 국성리와 응봉, 쌍교, 사거리의 각 일부와 궁동면의 청량리, 장재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부안군의 백산면 대죽리로 개설하였다.

[자연환경]

백산면 사무소에서 남으로 약 2㎞ 지점에서 평교리와 남쪽으로 이웃하고 있다. 서쪽으로 고부천이 흐른다.

[현황]

대죽리의 동쪽은 백산면 하청리와 정읍시 이평면 청량리, 남쪽은 정읍시 영원면 장재리, 서쪽과 북쪽은 백산면신평리, 평교리와 접한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2.95㎢이며, 대죽리·응봉리·국성리의 3개 행정리에 151가구, 244명[남 122명/여 12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백산서로를 따라 응봉마을, 봉동마을이 있고 백산로를 따라 대죽마을이 자리한다. 대죽마을은 백산-영원-고부로 이어지는 국도 제29호선을 따라 나 있는데 북으로는 백산면 평교리, 남으로는 정읍시 영원면 장재리와 경계를 이룬다. 예전에는 마을 어귀에 장이 형성되었는데 이 장터를 ‘대머리 장터’라고 불렀다. 마을 앞 10여 호의 작은 뜸을 ‘가는정’ 또는 ‘관운정(觀雲亭)’이라고 하였는데 이곳에 주막이 있어서 나그네들의 좋은 쉼터가 되어 주었다. 응봉마을은 대머리 동쪽, 들판 너머 매봉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국성마을은 백산-영원-고부로 이어지는 국도 제29호선 변에 대머리와 이웃한 마을로 대머리 서북쪽에 자리한다. 고부천[눌제천]을 끼고 있는 마을로 예전에는 조수가 닿고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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