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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면의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912
한자 浮石面의 集姓村
영어음역 Buseongmyeonui Jipseongchon
이칭/별칭 화변 이씨(禾辺李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집필자 이은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씨별 집성촌 주소 강당 이씨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당리 지도보기
성격 집성촌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개설]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는 강당 이씨(江堂李氏) 회안대군파가 입향하여 대대로 거주하며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지산리에 지산 조씨[평양 조씨] 등이 있다.

[명칭 유래]

강당 이씨는 전주 이씨부석면 강당리 일대에 거주하여 얻은 별칭이다. 또한 면(面)의 옛 이름인 화변에서 따서 화변 이씨(禾辺李氏)라고도 하였다. 지산 조씨(芝山 趙氏)는 입향조 조익등(趙益登)이 지산에 입향 정착하여 얻은 명칭이다.

[형성 및 변천]

강당 이씨는 태조의 제4왕자인 회안대군(懷安大君)[?~1421]의 차남인 창녕군(昌寧君) 이태(李泰)가 부석면 강당리 강촌마을에 입향하여 정착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한때 강당리 주민의 90% 이상이 회안대군의 후손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대다수가 도시로 떠났고 약 60여 가구만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주변의 이웃 마을까지 그 동족 수를 합하면 약 300여 가구에 이른다.

지산 조씨는 평양 조씨로 진사 조익등이 입향한 이래 300여년간 집성촌을 이루었다. 한때 80여호가 모여 살았으나 지금은 20호 정도 만이 남아 있다. 무과 급제후 선전관을 역임한 조아(趙雅)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아는 조선 시대 인물로 서산으로 유배를 온 수 그 후손들이 정착하였다. 후손 중 병자호란 때 선전관으로 싸우다 전사한 조후윤(趙後尹)[?~1636], 전란에 인조를 호종하고 병마절도사에 오른 조후량(趙後亮)이 있다.

[자연 환경]

전주 이씨 집성촌이 위치한 강촌마을은 강당리의 동북 변에 있는 자연 마을이다. 그러나 사실 ‘강촌(江村)’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바닷가에 인접하여 위치한 마을인데 무슨 연유로 그러한 이름을 얻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강당리는 해발 354m의 도비산(都飛山)을 북편으로 하고 동편으로 향한 마을인데, 1985년 서산A지구가 막히기 이전에는 바다와 직접 접한 마을이어서 농업 소득과 어업 소득으로 농가 수입이 높았던 마을이었다.

[현황]

강당 이씨 집성촌은 많은 후손들이 도시로 떠나 2011년 현재 60여 가구만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한편 강당 이씨 집성촌이 위치한 서산시 부석면 강당리 312번지에는 회안대군의 위패를 모신 숭덕사(崇德祠)[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2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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