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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910
한자 八峰面-集姓村
영어음역 Palbongmyeonui Jipseongcho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집필자 이은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면적 51.37㎢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있는 집성촌.

[형성 및 변천]

팔봉면의 가장 오래된 집성촌은 금학리경주 최씨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경주 최씨 서산 입향조는 최사(崔泗)인데 최사는 최몽량(崔夢亮)의 아들로 경기도 양주에서 살다가 서산으로 입향하였다고 한다. 경주 최씨가 서산에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지곡면 산성리이며, 최몽량의 정려가 남아 있다. 이 정려 역시 아들인 최사가 서산으로 이거하면서 양주에서 지곡으로 옮겨온 것이다.

어송리의 창포마을에는 창개 문씨라고 불리는 문뢰(文賴)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팔봉면의 문씨들은 처음부터 어송리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조선 초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호산록(湖山錄)』 등 지리지의 성씨조에는 본군 토성과 지곡 토성으로 문씨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 서산의 문씨는 합덕 문씨[홍주 문씨]로 조선 초 서산을 대표하던 한씨, 유씨, 이씨, 박씨, 김씨들과 친분 관계를 갖고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산록』 인물조에는 성균생원 문응벽(文應璧)의 아들인 문성해(文成海)가 사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나가 유학하였으며 서산의 유생들과 향교를 이건하도록 연명으로 상서를 올리는 데 함께 참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문성해 외에 다른 문씨는 찾을 수 없어 또 다른 활동상은 알 수가 없다. 조선 초 서산 지역에 자리 잡은 이후 후손들이 분파되면서 팔봉면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안씨는 덕송리양길리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안국인(安國仁)의 후손이 300여 년 간 거주해 온 집성촌이다. 안씨 역시 서산의 토성으로 등재되어 있어 조선 초기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한여현(韓汝賢)『호산록』에서 고려 시대 가장 훌륭한 성씨로 안씨, 정씨, 유씨를 꼽으면서도 저술 당시 이미 한미해졌다고 한탄하고 있었다. 이로 보아 1500년대에 토착 세력과 이거 사족의 세력 교체가 이루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1920년에 조사하여 발간된 『조선의 성(姓)』의 집성촌에 팔봉면진장리광산 김씨 집성촌과 양길리의 순흥 안씨 집성촌이 조사되어 있다.

그밖에 팔봉면 덕송리전주 이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이들은 세칭 ‘당꾸지 이씨[堂花李氏]’라고 불리는데 일제 강점기에 편찬된 『서산군지』에 의하면 이석신(李石新)의 입향 이래 250년 이상 마을을 지키고 살고 있다. 팔봉면 호리전주 이씨 덕천군파로 ‘범머리 이씨’라고 불리며 마을에서 400년 이상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중심인물은 이상호(李象鎬)이

[자연 환경]

팔봉면은 충청남도 서산시 북서부 가로림만에 접한 면으로 동쪽에는 팔봉산을 비롯한 여러 개의 산줄기가 뻗어 나와 마을을 감싸 안고 있으며, 어송리 절터, 진장리 성터, 고파도리 성터, 호리 성터, 양길리 절터 등 많은 문화 유적이 있어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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