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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리 당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607
한자 沙器里堂祭
이칭/별칭 해신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사기리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50년연표보기 - 6·25 전쟁으로 중단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2월~1월 1일
신당/신체 당나무[큰 소나무]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사기리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사기리 당제는 음력 12월부터 1월 1일 사이에 액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마을 입구에 장승을 깎아 세운 후, 당나무[큰 소나무]가 있는 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였다. 천수만 연안에 위치한 사기리는 범선이 접안하기에 유리한 포구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어항으로 발전했던 마을이다. 따라서 마을 앞 갯벌에는 이른 봄부터 대하를 비롯한 각종 어패류가 서식하는 풍부한 어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서산 A·B지구 간척 사업으로 인해 어촌의 면모는 사라졌다. 해마다 섣달그믐날 치제되는 사기리 당제는 지난날 서해안 지역 어촌에서 풍어를 기원하는 전형적인 당제였다. 비용은 호당 갹출을 하되 배를 소유한 선주나 유지들이 조금 더 많이 낸다. 제물은 돼지머리, 삼색실과, 포, 산적, 탕, 술 등이다.

[연원 및 변천]

사기리 당제의 연원은 분명치 않다. 다만 이 마을이 예로부터 어로를 주로 했던 포구였던 점을 고려할 때 조선 후기 서해 도서 지역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던 당제의 하나로 판단된다. 그러나 면면히 이어오던 사기리의 당제는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중단된 뒤로 복원되지 못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당산에 신목으로 숭배되는 당나무[큰 소나무]가 위치하고 주위에는 작은 소나무들이 촘촘히 서 있었다. 당산에는 제관들이 당제를 지내는 날 제물을 준비하기 위해 마련된 별당이 자리했다. 또한 마을 입구에는 액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2기의 남녀 목장승이 세워져 있었다. 재질은 소나무였으며 동체에는 동방대장군[남], 서방대장군[여]이 각각 묵서되어 있었다.

[절차]

마을에서는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10여 명을 선정한다. 그중 한 사람이 제관을 맡아 축문을 읽고 제를 주관한다. 제관은 부정을 피하기 위하여 별당과 샘에 금줄을 치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한다. 임산부가 있을 경우에는 다른 마을로 나갔다가 당제가 끝난 뒤 돌아온다.

당제의 절차는 섣달그믐 저녁에 먼저 대동샘에 샘제를 지낸다. 그리고 그 물을 떠다가 당나무 앞에 바친 뒤 제물을 올리고 재배한다. 이때 모든 제물은 별당에서 준비하여 상에 차려 제관들이 들고 가는데, 제물을 운반할 때는 말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백지를 입에 물고 가야 한다. 한편 마을에서는 섣달그믐 이전에 소나무로 장승을 깎아 세운 후 당제를 지내기 전에 장승제부터 지낸다.

[부대 행사]

당제를 마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주연을 베풀고 비용을 결산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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