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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 정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566
한자 鳳山井祭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봉생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민정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작 시기/일시 1546년연표보기 - 봉생리 우물은 마을 연혁비에 의하면 처음 굴착
재개 시기/일시 1975년연표보기 - 재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현재의 우물 재건
의례 장소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봉생리 봉산마을 지도보기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5일
신당/신체 봉산마을 우물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봉생리 봉산마을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지내던 우물 제사.

[개설]

봉산 정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봉생리 우물에서 봉산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정제(井祭)를 지내기 위해서 마을에서는 며칠 전부터 우물을 청소한다. 우물을 바닥까지 깨끗이 청소한 후에는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왼새끼로 금줄을 꼬아 사방을 두른다. 그리고 황토를 네 귀퉁이에 놓는다. 예전에는 제비를 집집마다 추렴하였으나 근래에는 서산시의 지원금과 마을 공동 기금을 활용한다.

[연원 및 변천]

봉생리 우물은 마을 연혁 비에 의하면 1546년에 처음 굴착되었다고 전해진다. 정제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1975년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에 다시 지내게 되었다. 예전에는 우물의 수원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 풍년과 흉년을 가늠하기도 하였다.

[신당/신체의 형태]

현재의 우물은 1992년에 석축으로 1.5m를 올려 쌓고 흙으로 메운 후 맨 위에 ‘정(井)’자 모양으로 돌을 깎아 올려놓았다. 우물 주위에는 사각 기둥을 세워 보호각을 건립하였으며, 지금도 비상시 식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매년 초 한 차례씩 우물의 바닥까지 청소를 한다.

[절차]

제의를 지낼 때는 1868년(고종 5)에 제작된 용포를 국기와 함께 게양하는데, 이 용포에는 한문으로 동치 7년 정월 초사흘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고 묵서되어 있고, 중앙에는 용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제의는 남자들이 풍물을 치면 주부들이 백지를 말아서 소지 종이를 올리며 각자 소원을 빌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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