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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134
한자 天日製鹽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재윤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염전에 바닷물을 끌어 들여서 태양열로 수분을 증발시켜 식염을 결정시키는 방법.

[개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서산군에 염소(鹽所)가 1곳, 염정(鹽井)이 2곳, 염분(鹽盆)이 3곳, 해미현에는 염분(鹽盆)이 1곳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본래 가마솥에서 바닷물이나 농축된 소금물을 끊여서 생산해 낸 소금인 자염(煮鹽)을 생산하였으나, 자염은 연료 소비가 많아서 값이 비쌌으며 국내의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웠다.

[변천]

1907년 인천에서 일본인에 의해 오늘날의 천일제염이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까지 개발된 염전은 약 7,000㏊에 달하였는데, 이 가운데 해방 시 남한의 염전 면적은 2,800㏊이었다. 1927년에 발간된 『서산군지』에 의하면 서산군의 염전 면적은 147만 6860㎡로 연간 1,497톤을 생산하였다고 한다.

지역별로 보면 부석면 3만 7025㎡에 1만 7460㎏, 팔봉면 1만 1570㎡에 9,480㎏, 지곡면 5,785㎡에 5,940㎏, 대산면 10만 5785㎡에 2만 7000㎏, 해미면 9,917㎡에 3,000㎏, 고북면 21만 7191㎡에 7,200㎏, 안면면 37만 6861㎡에 50만 2200㎏, 남면 2만 8099㎡에 6,060㎏, 태안면 7,933㎡에 2만 1600㎏, 근흥면 11만 9000㎡에 7만 2000㎏, 소원면 45만 6861㎡에 2만 8200㎏, 원북면 6만 6116㎡, 1만 2480㎏, 이원면 27만 2728㎡에 66만 4980㎏이었다.

6·25 전쟁 이후에 약 1,300㏊의 염백염전이 북한으로 넘어가고, 전쟁의 피해로 소금 생산량이 격감함에 따라 정부는 민영 염전의 개발을 적극 장려하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 염전이 늘어나 생산 과잉 현상이 나타나자 1962년 정부는 전매 제도를 폐지하고 염업을 민영화하였다. 특히 1979년 울산에서 기계염(機械鹽)이 생산되고,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천일제염 산업의 노동력 확보가 어려워짐에 따라 1980년대 후반 점차 사양화되었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는 많은 염전들이 폐전되었다.

[현황]

1974년 서산의 염전은 218개소 1,291㏊로 연간 120만 6900톤이 생산되었으나 점차 사양화되고, 간척 사업의 결과로 2011년 현재 15개소 111.2㏊에 5,340톤이 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별로 보면 대산읍에 14개소 102.9㏊에서 5,110톤, 지곡면에 1개소 8.3㏊에서 230톤이 생산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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