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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985
한자 趙羲天
영어음역 Jo Huicheon
이칭/별칭 중오(中五),난사(蘭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집필자 조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5년연표보기 - 조희천 생
몰년 시기/일시 1924년연표보기 - 조희철 졸
묘소|단소 묘소 -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대기리
성격 유학자
성별
본관 평양

[정의]

근대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가계]

본관은 평양, 자는 중오(中五), 호는 난사(蘭史). 고려 충선왕 때의 공신인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길주목사를 지낸 조존항(趙存恒)이고 어머니는 영산 신씨이다.

[활동 사항]

조희천(趙羲天)[1845~1924]은 어려서부터 명민하였고, 유려한 문장과 단정한 필법을 구사하였다. 아버지 조존항과 스승 조존화(趙存華)에게서 학문을 배워 서산·태안 지역을 대표하는 기호학파 계열의 성리학자로 성장하였다. 학문 연구와 더불어서 지역 유생들의 교육과 주민 교화에 힘썼다.

조희천의 문집인 『난사유고(蘭史遺稿)』를 통해 향교의 중수기를 짓거나 경이정(憬夷亭)의 상량문을 쓰는 등 지역 사회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유학자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를 태안으로 초청해 지역 유생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치도록 하였고, 태안군 근흥면 안기리에서 서당을 하던 최명희(崔命喜)와도 깊이 사귀었다. 조희천이 죽었을 때 500여 명이 문상을 왔을 정도로 그의 명성과 영향력이 컸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난사기(蘭史記)」와 조희천이 죽은 뒤 후손들이 엮은 문집인 『난사유고』가 있다. 『난사유고』는 정치, 국사, 외교에 대한 평론으로 수십 권이었으나, 현재는 30여 권만 전한다. 시작(詩作)에도 뛰어나 여러 권의 시집을 남겼다.

[묘소]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대기리에 묘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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