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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848
한자 金觀柱
영어음역 Gim Gwanju
이칭/별칭 경일(景日),문익(文翼)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43년연표보기 - 김관주 생
활동 시기/일시 1765년연표보기 - 문과에 병과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72년연표보기 - 함경도 갑산 유배
활동 시기/일시 1793년연표보기 - 다시 서용되어 용궁현감이 됨
활동 시기/일시 1802년연표보기 - 우의정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04년연표보기 - 삭직
몰년 시기/일시 1806년연표보기 - 유배가는 도중 병사
추모 시기/일시 1864년연표보기 - 관직 복구, 의금부에서 죄명이 모두 삭제됨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문익 시호 받음
부임|활동지 용궁현 -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유배|이배지 갑산 - 함경남도 갑산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경주
대표 관직 우의정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일(景日). 예조참의를 지내고 성암서원에 제향된 김홍욱(金弘郁)[1602~1654]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김두광(金斗光), 할아버지는 김운경(金運慶), 아버지는 김한록(金漢祿)이다. 어머니는 서옥업(徐玉業)의 딸이다. 김한록영조의 장인인 김한구(金漢耉)의 사촌 동생이다. 서산의 경주 김씨는 일명 한다리 김씨라고도 불리는데 가계는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근간을 두고 있다.

[활동 사항]

김관주(金觀柱)[1743~1806]는 서산 출신인 정순왕후(貞純王后)와 6촌간으로, 노론 벽파의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1765년(영조 41)에 치러진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정언·홍문관교리를 지냈으며, 이후 노론 벽파의 중진으로 활약하였다. 1772년(영조 48)에 청명류 사건(淸名流事件)이 일어나자 홍봉한(洪鳳漢) 일파의 척신 정치를 제거함이 옳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 함경도 갑산에 유배되었다. 1793년(정조 17)에 다시 서용되어 용궁현감이 되었으나 그 이상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

1800년(순조 즉위) 정순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자 이조판서·광주유수 등을 거쳐 1802년(순조 2)에 우의정이 되었다. 이때 심환지(沈煥之)·정일환(鄭日煥)·김달순(金達淳) 등과 신유사옥을 일으켰다. 1804년에 정순왕후가 다시 수렴청정하려는 것을 반대하다가 이시수(李時秀) 등과 함께 삭직되었다. 1806년에 대사헌 신헌조(申獻朝)가 사당(私黨)을 위하여 정조의 뜻을 배신한 죄 및 순원왕후(純元王后)의 삼간택을 방해한 죄목으로 탄핵하여, 함경도 경흥으로 유배 가는 도중 이원에서 병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864년(고종 1)에 관직이 복구되었으며 같은 해에 의금부에서 죄명이 모두 삭제되었다. 1910년에 문익(文翼)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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