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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박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796
한자 密陽朴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세거|집성지 충청남도 서산시 잠홍동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월계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남정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박언침(朴彦忱)

[정의]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고, 밀양을 본관으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세거 성씨.

[개설]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조선 전기의 각종 기록 중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그리고 『호산록(湖山錄)』의 서산 성씨조에 ‘서산의 속성’, ‘지곡의 촌성’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밀양 박씨가 누락되어 있어 이 시기에 이르러 이미 존재가 미미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기록 중에 등장하는 박씨도 그 본관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다만 서산과 인접한 예산군 광시면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밀양 박씨 집성촌이 있어 이들과의 관계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산에 거주하는 밀양 박씨는 다양한 계파로 나뉘어져 있다.

[연원]

밀양 박씨의 시조 박언침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서 밀성대군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이를 연유로 하여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密陽)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국내 인구 중 약 300만 명 이상이 밀양 박씨로 조사되었을 만큼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현황]

밀양 박씨가 서산에서 사족 활동을 활발히 했던 시기는 대체로 1700년대 무렵으로 추측된다. 조선 시대 생원 진사 급제자의 명단인 『사마방목(司馬榜目)』에서 서산을 거주지로 한 밀양 박씨박내함(朴來咸), 박서회(朴瑞會), 박승현(朴承顯), 박용섭(朴容燮), 박용철(朴容轍), 박주병(朴周秉) 등 총 6인이 확인되는데, 모두 17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 초반의 인물이며 무과 급제자 박정덕(朴鼎德)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외에도 예조의 『효행등제등록(孝行等第謄錄)』에는 1713년(숙종 39) 서산의 효자 박성갑(朴聖甲)이 등재되어 있다. 박성갑의 신분은 유학(幼學)이며 복호(復戶)의 포상을 받았다. 역시 본관은 확인할 수 없지만 밀양 박씨로 추정된다.

한편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집성촌을 조사하여 편찬한 『조선의 성(姓)』에서는 잠홍리[현 서산시 잠홍동, 20호], 월계리[46호], 도당리[25호], 남정리[34호] 등의 밀양 박씨 집성촌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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