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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조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792
한자 平壤趙氏
이칭/별칭 지산 조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480년연표보기 - 조아의 둘째 아들인 조계종이 그의 식솔과 조카들을 데리고 입향
본관 평양 - 평양직할시
입향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조춘
입향 시조 조아

[정의]

조춘(趙椿)을 시조로 하고 조아(趙雅)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연원]

평양 조씨의 시조는 조춘으로 고려 시대 금자광록대부 추밀원부사(金紫光祿大夫樞密院副使)를 지냈다. 당시 남송(南宋)에 들어가 금(金)나라를 정벌한 공로로 상장군(上將軍)이 되었다고 한다. 조춘의 선조는 중국에서 귀화하였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역사적 사실은 확인하기 어렵다. 1924년 학소(鶴巢) 윤창현(尹昌鉉)이 발간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기자(箕子)가 동쪽으로 올 때 함께 들어온 사람 중 한 사람의 후손이라고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본래 본관은 상원(祥原)이었으나 그의 현손인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1237~1308]가 고려 충렬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선충익대보조공신(宣忠翊戴輔祚功臣)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에 봉해진 까닭으로 후손들이 평양(平壤)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입향 경위]

시조 조춘의 9세손으로 조선 시대 사인(舍人)을 지낸 조아에 의해 서산과 태안 일대에 입향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전해진다. 조아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임금과 자주 시폐(時弊)를 논하였는데, 그러던 중 왕의 뜻을 거스르게 되어 태안군으로 유배를 오게 되었다. 비록 유배지였으나 아름다운 산수와 풍광 그리고 살기 좋은 곳임을 느낀 조아는 복직된 후에도 자신이 머물렀던 곳을 잊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들들에게 이르기를 ‘나라가 어지러우니 잠시 내려가 살다가 태평성대가 오거든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유언으로까지 남기게 되었다.

그런데 『태종실록(太宗實錄)』에는 1410년 3월 조아의 아버지인 조호(趙瑚)가 서산 유씨 유숙(柳淑)의 첩과 손자 유혜강(柳惠康) 등에게 역적을 옹호하는 듯 발언을 하였다가 큰 화를 입게 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서산 출신의 인물과 가깝게 지냈다는 것은 그 이전부터 이미 서산과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조아의 큰아들인 조숙종(趙叔宗)과 큰손자인 조진경(趙晋卿)은 서산으로 오지 않았고, 1479년(성종 10) 폐비 윤씨 사사사건 등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조아의 둘째 아들인 조계종(趙季宗)이 1480년(성종 11)에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태안반도의 원북 지역으로 내려왔다. 그때 조계종은 자신의 식솔들과 함께 형의 아들인 조요경(趙堯卿), 조준경(趙俊卿)과 종손인 조팽령(趙彭齡)을 데리고 내려왔으며, 후에 이들이 서촌파(西村派)[대기리파], 상리파, 포동파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조계종의 후손들은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 일대로까지 퍼져 집단을 이루고 살았는데, 부석파라고 하며 ‘지산 조씨(芝山 趙氏)’로 불리고 있다.

1619년에 편찬된 서산의 사찬읍지 『호산록(湖山錄)』의 인물조에는 평양 조씨 조회침·조회령 형제와 조회령의 아들 조경록·조경희·조경고, 조경록의 아들 조안방 등이 등재되어 있다.

[현황]

조선 후기에 편찬된 읍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 서산 명환조에서는 조아는 ‘본관이 평양으로 정숙공 조인규의 현손이고 벼슬이 사인에 이르렀으며, 어떤 일에 대해 따지다가 이 고을에 귀향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아의 후손 조후윤(趙後尹)과 그의 아우 조후량(趙後亮)에 대한 행적이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의 성』에서도 서산의 성씨로 부석면 지산리평양 조씨들이 32가구 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82년에 편찬된 『서산군지』에서는 ‘지산 조씨’라고 하여 조익등(趙益登) 진사 이래 약 340년간 취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매우 이른 시기에 입향한 성씨 중 그 유래를 구체적인 사료로 확인할 수 있는 드문 사례이다.

[관련 유적]

평양 조씨들이 가장 큰 동족 집단을 이루고 있는 태안 일대에 관련 유적들이 남아있는데 대표적으로 제단인 회곡단(檜谷壇)이 있다. 이 회곡단은 조아의 할아버지 조윤선(趙允瑄)과 아버지인 조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제단이다. 이외에도 조요경을 모신 사우 숭보사(崇報祠), 조준경을 모신 숭모사(崇慕祠)와 용운사(龍雲祠) 등이 있어 현재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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