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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735
한자 城郭
이칭/별칭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집필자 서정석

[정의]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남아 있는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개설]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이다. 성은 내성을 말하고 곽은 성의 주위를 에워싼 나성의 형태로, 우리나라는 내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성곽으로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날의 서산 지역은 백제 시대 때의 기군(基郡)이 모태가 되었다. 기군은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부성군(富城郡)으로 불렸는데, 오늘날의 태안 지역인 성대혜현(省大兮縣)과 서산의 대산(大山) 지역인 지육현(知六縣)을 거느리고 있었다. 반면에 홍성과의 경계 지역인 해미면 일대에는 백제 때의 우견현(牛見縣) 지역이었고, 운산면 일대에는 여촌현(餘村縣)이 설치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서 태안이 서산 지역이었던 데 비해 해미면 일대는 예산 지역이었고, 운산면 일대는 당진 지역이었다. 지금의 행정 구역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오늘날의 행정 구역을 단위로 해서 성곽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하는 만큼 태안 지역은 태안군에서 다루고, 해미면운산면 일대의 산성만을 여기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현황]

서산 지역에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성곽이 남아 있다. 시기적으로는 고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고 있고, 위치적으로는 평지에 자리한 평지성에서 높은 산봉(山峰)에 자리한 산성이 있으며, 기능적으로는 단순한 방어 시설에서 지방 통치의 근간이 되는 치성(治城)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곽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성곽으로는 원(原) 서산 시내에 북주산성(北主山城)·명림산성(鳴林山城)·서산읍성 등이 있고, 고북면에는 신송리 산성·연암산성이 있으며, 해미면에는 반양리 산성·웅소성리 산성·해미읍성 등이 있다. 운산면에는 동암산성·대성산성·전라산성(田螺山城)이 있고, 음암면에는 율목리 산성·상홍리 산성이 있으며, 성연면에는 성왕산성이 있다. 지곡면에는 부성산성(富城山城)이 있고, 인지면에는 화수리 산성·토성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팔봉면 고파도리호리에도 수군만호가 주둔하고 있던 석성이 남아 있고, 대산읍에도 평신진성 터가 남아 있다.

이렇게 서산 지역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성곽이 자리하고 있지만 이러한 성곽이 언제, 어떠한 목적으로 축조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조선 시대에 축조된 읍성이나 진성(鎭城)은 단편적인 기록을 통해 그래도 축조 목적을 어느 정도 확인해 볼 수 있지만,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산성은 그 축조 시기와 축조 목적을 잘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이렇다 할 지표 조사나 발굴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더더욱 성격을 알 수 없는 형편이다. 다만 그동안 간헐적인 연구를 통해 대략적이나마 성격이나 축성 시기가 밝혀진 것도 있다.

1. 부성산성

지곡면에 있는 부성산성은 서산 지역의 산성 가운데에서 가장 북단에 자리하고 있고, 바닷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 왔다. 태안 마애삼존불과 서산 마애삼존불을 통해 백제 때부터 서산 지역이 대중국 교류의 관문 역할을 해 왔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부성산성이야말로 그러한 대중국 교류의 전진 기지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2. 대성산성

운산면대성산성은 규모가 2,190m에 이르고 있는 대단히 큰 규모의 산성이다. 전체 둘레가 3,500m 정도에 이르는 연암산성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더구나 이 산성은 1619년에 편찬된 서산 지역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의하면 ‘상왕(象王)’이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대성산성을 백제 부흥 운동기의 중심 거성이었던 주류성(周留城)에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3. 전라산성

운산면의 전라산성은 주변에 있는 여미리 고분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여미리 고분군이 백제 시대 고분군임을 들어 백제 시대 산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입지나 구조, 출토 유물로 볼 때 오히려 통일 신라가 아닐까 하는 주장도 있다. 전라산성은 그 위치나 규모로 볼 때 이 지역의 치성(治城)이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전라산성이 자리한 운산면 일대는 백제 때 여촌현, 통일 신라 때 여읍현(餘邑縣)이 있었던 곳인 만큼 여촌현이나 여읍현의 치소에 해당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4. 북주산성

서산 시내에 자리하고 있는 북주산성은 현재의 서산읍성이 축조되기 이전에 서산 지역의 읍성이었다. 그런 점에서 옛읍성[古邑城]이 되는 셈이다. 현재의 읍성이 1475년(성종 6)에 축성된 만큼 그 이전에는 북주산성이 읍성의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면 백제 때의 기군이나 통일 신라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부성군 치소가 북주산성이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서산 지역의 성곽은 대체로 지방 통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 시대의 행정 구역으로는 군현 이외에 향·소·부곡도 있었다. 이러한 향·소·부곡에까지 성곽이 축조되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향·소·부곡이 단순히 인구가 적어 군현에 편제되지 못한 곳일 뿐이라면 이곳에도 치소로서의 성곽이 축조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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