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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731
한자 先史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선사/선사
집필자 이현숙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발견된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의 유적.

[개설]

선사 유적은 선사 시대 사람들이 남긴 생활·분묘·생산 등 다양한 삶의 흔적이다. 선사 시대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은 시기의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그리고 초기 철기 시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며, 약 70만 년 전부터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서산 지역은 충청남도의 서북부에 자리하고 있는 해안 지역으로 선사 시대 이래로 매우 양호한 유적 환경을 갖추고 있다. 리아스식 해안을 중심으로 후면에 산맥이 크게 발달하였으며, 천수만가로림만을 중심으로 주변에 인접해 있는 넓은 구릉과 발달된 하천은 선사 시대부터 매우 양호한 인문 환경을 갖추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서산 지역의 선사 유적 현황은 주로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다. 최근에는 발굴 조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구체적인 유구 현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많아졌다. 선사 유적의 형태는 주로 유물 산포지와 주거지, 무덤, 조개더미[패총]의 형태로 확인되는데, 구석기 시대 유적은 모두 유물 산포지로만 확인된 상태이다. 반면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신석기 시대 유적은 주거지와 조개더미, 유물 산포지, 청동기 시대 유적은 주거지와 분묘, 조개더미, 유물 산포지, 그리고 초기 철기 시대 유적으로는 분묘 유적이 확인되었다.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 유적은 대부분이 유물 수습을 통하여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충청남도 서산시의 석남동 구석기 유적, 성연면일람리 구석기 유적, 음암면도당리 구석기 유적 등지에서 수습된 유물은 대부분이 뗀석기[打製石器]이다. 구체적인 유구 내용은 확인할 수 없으나, 대부분의 유적이 하천변에 인접한 곳에 분포하였다. 따라서 서산의 상당한 지역이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공간으로 이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유적은 주거지와 조개더미, 그리고 유물 산포지로 구분된다. 주거지는 해미면기지리 유적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었는데, 방형의 평면 형태에 주거지 외곽에 기둥 구멍이 배치된 형태로 서산 지역에서 조사된 대표적인 신석기 시대의 주거 유적이다. 이러한 신석기 시대 주거지는 최근 대규모 취락의 형태로 확인되는 영종도 는들 유적과 삼목도 유적 등에서 조사된 주거지의 형태와 출토 유물 상에서 거의 유사한 양상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앞으로 서산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대규모 취락 유적의 확인 가능성도 매우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개더미는 주로 해안가에 인접한 지역에 분포하는데, 서산시의 북쪽 끝부분에 해당하는 서산시 대산면의 대죽리 조개더미에서 남쪽 끝부분의 태안군 안면읍의 고남리 조개더미에 이르기까지 전체 범위에 걸쳐 분포하는 특징을 보인다. 대죽리 조개더미에서는 화덕과 불탄 자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생활 흔적이 조사되었다. 이밖에 대산리·웅도리[대산리 신석기 유적, 웅도리 조개더미] 등지에서도 관련 유적이 확인되었으나, 전체 유적 수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이다. 이는 유적 자체의 부재라기보다는 조사의 미비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 유적은 주거지와 분묘, 조개더미, 유물 산포지로 구분된다. 생활 유적은 주로 주거 유적이 중심을 이루는데 서산 휴암리 선사 유적지, 기지리 유적, 서산 부장리 고분군, 신송리 유적 등을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서산 지역에서 확인되는 주거지들은 대체로 청동기 시대 전기의 [세]장방형 주거지와 후기 단계의 원형·방형계 주거지들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소위 휴암리식 주거지로 불리는 주거지가 확인되는 비율이 높다. 분묘 유적은 인지면 둔당리 고인돌·남정리 고인돌이 조사되었는데, 모두 기반식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밖에 다른 유구의 형상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청동기 시대에 들어와 무덤 조영이 보편화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전 시기에 비해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이 구체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분묘 유적은 추후 조사를 기다려 그 특징을 살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서산 지역에서 조사된 청동기 시대 유적의 분포 상태로 보아 특정 지역에 밀집된 것이 아니라 서산 지역 전역에 넓게 산포된 형상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유적 분포 양상은 서산 지역 전역이 청동기인의 주요한 생활 무대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철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 유적으로는 최근 예천동에서 토광묘 2기와 옹관묘 1기가 조사되면서 그 실상이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 초기 철기 시대 문화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중국 연나라의 영향으로 철기가 보급되는 한편 세형동검과 함께 소위 청동의기로 불리는 청동기 제작 기술이 최고도에 달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문화상에 비해 주거 양상 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데, 서산 지역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지역에서도 처음으로 초기 철기 시대 관련 유적이 확인되면서 이 시기 문화의 일면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초기 철기 시대 관련 문화가 대체로 서해 연안의 해로를 통해 유입되었다는 연구 견해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 지역에서의 조사 여하에 따라, 이 시기 문화상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다양한 유적들이 확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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