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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713
한자 金鶴芳旌閭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광암마을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89년연표보기 -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7년연표보기 - 중수기에 의하여 중수 추정(1947)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 중수기에 의하여 중수 추정(1983)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개축기에 의하여 개축 추정
현 소재지 김학방 정려 -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광암마을 지도보기
원소재지 김학방 정려 -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광암마을
성격 정려
양식 홑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광암마을에 있는 개항기 효자 김학방(金鶴芳)의 정려.

[개설]

김학방 정려(金鶴芳旌閭)는 부친을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던 김학방[1746~1822]의 효자 정려이다. 김학방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경주 김씨(慶州金氏) 가문의 후손이다. 1768년(영조 44) 무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냈고 통정대부 증직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이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밤낮으로 시중들며, 병세를 살피기 위하여 때때로 부친의 변을 맛보고 지성으로 간병하였다. 그러나 그 보람도 없이 부친이 별세하자 무덤 옆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면서 무려 6년간이나 눈물로 부모를 그리워하였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를 보고 그 애절함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위치]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입구에서 800m 정도 거리에 광암마을이 있고, 광암마을의 안쪽에 김학방 정려가 자리한다.

[변천]

김학방의 효성을 인근의 유림들이 칭송하여 1889년(고종 26)에 명정이 내려졌다. 정려각에는 명정 현판과 1947년, 1983년에 각각 찬한 중수기, 그리고 1995년에 찬한 개축기가 걸려 있다. 이 기문을 통해 근래의 중수 상황을 알 수 있다.

[형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로, 전면에 홍살을 두르고 안에 명정 현판을 걸었다. 구조는 방형 초석 위에 방형 기둥을 세웠는데, 공포(栱包)는 도리 계통으로 처리하였고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김학방 정려 내부에는 1889년에 내려진 ‘효자통훈대부사헌부감찰무과급제자김학방지문(孝子通訓大夫司憲府監察武科及第者金鶴芳之門)’이라는 명정 현판과 중수기, 그리고 개축기가 걸려 있다. 현재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는 세칭 ‘광암 김씨’라고 불리는 경주 김씨들의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서산 지역의 가장 북쪽 지역인 서산시 대산읍학주 김홍욱(金弘郁)의 입향 이래 경주 김씨가 수백 년간 세거해 왔다. 서산시 대산읍에는 김홍욱 신도비와 묘역김학방의 효자문이 있으며, 집성촌이 형성되어 대대로 후손이 거주하였다. 위의 유적들과 더불어 김학방 정려는 서산의 명문가인 경주 김씨가의 확산과 문중 운영, 사족 활동 등을 보여 주는 문화재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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