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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631
한자 金弘翼神道碑-墓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826년연표보기 - 김홍익의 5대손 김민주(金民柱)가 신도비 건립
현 소재지 김홍익 신도비와 묘역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원소재지 김홍익 묘소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사당|배향지 충곡서원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
성격 신도비|묘역
관련 인물 김홍익(金弘翼)|김민주(金民柱)|김정희(金正喜)|김노경(金魯敬)|이조원(李肇源)
크기(높이,길이,둘레) 186㎝[비신 높이]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홍익(金弘翼)의 신도비와 묘역.

[건립 경위]

김홍익이 연산현감(連山縣監)으로 재임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를 따라 인조가 몽진한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진군하였으나, 도중에 험천(險川)에서 청나라 군대의 습격을 받아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 후 시신을 수습하여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한다리마을에 가장(假葬)하였다가 1637년(인조 15) 현재의 위치인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의 선바위 포구 안쪽의 계곡으로 옮겨 장례를 치렀다고 전하며, 이에 조정에서는 정려를 하사하고 시호를 내렸다.

신도비는 1826년(순조 26) 5대손 김민주(金民柱)가 건립하였다. 비문은 김재찬(金載瓚)이 찬하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아버지인 김노경(金魯敬)이 글씨를 썼으며, 이조원(李肇源)이 전액(篆額)을 썼다.

[위치]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의 선바위 포구 안쪽 계곡에 김홍익의 묘소와 함께 신도비가 위치하는데, 묘소는 신도비를 감싸고 있는 뒷산 중턱에 동북동향으로 자리한다.

[형태]

신도비는 장방형의 화강석 대좌 위에 홈을 파서 화강암 재질의 비신을 세우고 팔작지붕 형태의 이수(螭首)를 얹었다. 비신의 크기는 높이 186㎝, 너비 53㎝, 두께 45㎝이다. 묘역에는 문인석, 상석, 석등이 배치되어 있다.

[현황]

묘역의 석물 중 문인석과 상석 등은 제작 시기가 오래되어 보이며, 석등은 근래에 새로 둔 것이다.

[의의와 평가]

김홍익은 서산의 명문가 경주 김씨(慶州金氏) 가문의 인물로, 연산현감으로 재직 중 전사하였으므로 논산의 충곡서원(忠谷書院)에도 배향되어 있다. 김홍익 신도비와 묘역경주 김씨가의 활발한 사족 활동의 면모를 보여 주는 문화재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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