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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리 가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603
한자 舞將里窯址
이칭/별칭 무장리 요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무장리 산204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박형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7월연표보기 -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10월 27일연표보기 -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에서 시·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3월 4일연표보기 -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에서 시·발굴 조사 완료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조사 보고서가 『서산 무장리 요지』로 발간
소재지 무장리 가마터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무장리 산204 지도보기
성격 가마터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무장리에 있는 조선 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가마터.

[위치]

서산에서 대산으로 향하는 국도 29호선지곡면 무장리 일원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서산지방산업단지 조성 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1996년 7월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고, 이후 1997년 10월 27일부터 1998년 3월 4일까지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에서 시·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내용에 대한 보고서는 2000년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서산 무장리 요지』로 발간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삼국 시대 탄요 1기, 고려 시대 토기요 3기, 고려 시대 토기요 관련 폐기장 2기, 조선 시대 분청사기요 2기, 조선 시대 백자요 1기, 백자요 관련 폐기장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서산시 지곡면 무장리 일원에서 확인된 가마터 유적 중 고려 시대 토기 가마 3기는 장축 방향이 능선 사면의 진행 방향과 평행하도록 완전 지하식으로 조성된 것이었다. 가마는 기본적으로 아궁이-연소실-소성실-연도(煙道) 등을 갖춘 구조인데, 독특하게 가마 주변에 원형 구덩이가 별도로 조성되어 가마 연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마의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횡단면 형태는 터널형을 이룬다. 연소실과 소성실은 뚜렷한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소성실 바닥이 점차 경사를 이루며 오르다가 연도부와는 거의 수직 형태로 꺾여 이어진다.

무장리 가마터에서 확인된 토기 가마의 구조는 진천 삼룡리·산수리 유적, 공주 귀산리 유적, 경주 물천리·손곡동 유적, 김해 구산동 유적, 보령 진죽리 유적, 영암 구림리 유적 등 원삼국 시대 이래 토기요의 일반적인 구조를 보인다. 발굴 조사 보고서에서 무장리 토기 가마의 조업 연대는 진죽리 유적, 구림리 유적과의 생산품 비교 및 고고지자기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반까지 비정되었다.

무장리 가마터에서 확인된 분청사기 가마는 모두 2기가 확인되었는데, 잔존 상태가 좋지 않아 소성실의 바닥 일부만이 확인되었다. 무장리 분청사기 가마 생산품은 대부분 그릇 내면의 동체 상단부에만 귀얄[풀이나 옻을 칠할 때에 쓰는 기구]로 백토를 분장한 귀얄 분청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일부 승렴문과 국화문으로 도장을 찍은 인화문 분청사기, 내저면의 중심으로부터 와선문을 돌리고 귀얄로 분장한 분청사기 등이 확인되었다. 조업 시기는 공주 학봉리 유적, 광주 충효동 유적, 천안 양곡리 유적 등과의 비교를 통해 15세기 후반~16세기 초반까지 운영되었던 것으로 편년되었다.

무장리 가마터에서 확인된 백자 가마는 가마의 대부분이 유실되고 소성실 일부와 연도부가 확인되었을 뿐으로, 연도부에는 모두 6개의 연도가 조성된 것이 특징적이다. 백자 가마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체로 접시, 완, 대접 등의 일상생활 용기들이다. 평저굽 또는 평굽의 굽 형태를 보이고 굽바닥에 굵은 모래받침을 받쳐 포개구이 한 것이다. 백자 가마의 조업 시기는 곡성 송강리 유적 출토품과 특징을 비교하여 송강리 유적보다 늦은 18세 중반에서 18세기 후반으로 편년되었다.

[현황]

현재 서산시 지곡면 무장리 일대에는 서산지방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유적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의의와 평가]

무장리 가마터는 서산 지역에서 유일하게 정식 학술 발굴 조사를 통해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던 유적으로,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서산 지역의 도자사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준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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