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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558
한자 瑞山富長里古墳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음암로 499
집필자 이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6월 2일연표보기 - 지표 조사 착수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6월 11일연표보기 - 지표 조사 완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8월 25일연표보기 - 1차 시굴 조사 착수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9월 8일연표보기 - 1차 시굴 조사 완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11월 10일연표보기 - 2차 시굴 조사 착수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12월 9일연표보기 - 2차 시굴 조사 완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3월 22일연표보기 - 1차 발굴 조사 착수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12월 20일연표보기 - 1차 발굴 조사 완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5년 9월 5일연표보기 - 2차 발굴 조사 착수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5년 12월 9일연표보기 - 2차 발굴 조사 완료
보수|복원 시기/일시 2006년 11월연표보기 - 서산 부장리 고분군 1만 4108㎡ 복원
문화재 지정 일시 2006년 11월 6일연표보기 - 사적 제475호로 지정
소재지 서산 부장리 고분군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음암로 499[부장리 219-2]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충남역사문화연구원 - 충청남도 공주시 금흥동 110-2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공주박물관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360
성격 고분
관리자 서산시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제475호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고분군.

[개설]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음암 임대 아파트 신축 공사 부지에 대한 문화 유적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조사 지역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 219-2번지 일대이다. 조사 지역의 자연 지형을 살펴보면, 해발 35~50m 정도의 구릉으로 주변에 대교천이 집수되는 성암저수지가 있어 구릉과 계곡부, 평야 지대 곳곳에 밭과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서산 부장리 고분군의 지표 조사는 2003년 6월 2일부터 11일까지 10일간의 일정으로 실시하였다. 전체 조사 면적은 6만 2122㎡로, 자연 지형에 따라 조사 지역의 중심부를 경계로 북서쪽을 Ⅰ구역, 남동쪽을 Ⅱ구역으로 설정하였다. Ⅰ구역은 해발 35~48m 내외의 평탄면과 완만한 사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사 결과 남향 사면과 북동 사면에 바로 인접한 밭에서는 청동기 시대 무문토기편 및 고려·조선 시대 기와편 및 토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Ⅱ구역은 해발 40~55m 내외 구릉의 능선부와 계곡부로 이루어져 있다. 조사 결과 남향 사면은 관상수 식재로 인해 심하게 훼손되어 있고 북쪽 구릉은 곡간부가 형성되어 있어, 유적이 조성되기 어려운 지형으로 파악하였다. 이에 유구의 존재 가능성이 높은 Ⅰ구역의 남향 능선 평탄면을 중심으로 한 1만 7190㎡에 대해 시굴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시굴 조사는 2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1차 조사는 2003년 8월 25일부터 9월 8일까지 16일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조사 결과 주거지·수혈 유구 등 생활 유적과 널무덤·독무덤 등의 분묘 유적, 그리고 청동기 시대·백제의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시굴 조사 결과에 대한 문화재청의 검토 결과, 유구의 밀집도가 높아 사업 부지 전체에 대한 시굴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따라서 기존 시굴 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을 제외한 사업 부지 전체 4만 4932㎡에 대하여 추가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2003년 11월 10일부터 12월 9일까지 30일간에 걸쳐 2차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시굴 조사는 우선 대상 구역을 격자법(格子法)[grid method]을 이용하여 10m 간격으로 구획한 후, 각 그리드 내에 너비 1.5m 트렌치를 ‘ㅡ’ 자로 하여 제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트렌치는 전체 조사 지역에 10m 간격으로 A지구에 15개, B지구 16개, C지구 8개, 총 39개를 설치하였다.

조사 결과 이 지역은 청동기 시대 주거지 및 수혈 유구와 백제의 주거지 및 수혈 유구, 널무덤, 돌널무덤이 구릉 전체에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A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구 2기, 백제 유구 11기가 확인되었으며, B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구 3기, 백제 유구 12기가 확인되었다. C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구 5기, 백제 유구 3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청동기 시대 주거지 내에서 공렬토기편과 숫돌 등이 확인되었으며, 백제 주거지 및 수혈 유구 내에서는 시루편, 우각형파수, 장란형토기, 발형토기 등이, 널무덤에서는 원저단경호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청동기 시대 및 백제의 생활 유적과 백제 분묘 유적이 확인된 약 4만 2900㎡에 대한 발굴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발굴 조사는 2차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실제 조사 일수는 총 180여 일이다. 1차 조사는 2004년 3월 22일부터 12월 20일까지로 주로 청동기 시대와 백제 수혈 주거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일부 분구묘에 대한 조사도 병행하였다. 2차 조사는 2005년 9월 5일부터 2005년 12월 9일까지로 1차 미조사 분구묘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총 257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유구는 주거지 36기, 수혈유구 10기로 총 46기이며, 백제 유구는 주거지 46기, 수혈 유구 17기, 분구묘 13기, 돌덧널무덤 3기 등 모두 79기가 확인되었다. 조선 시대 유구는 주거지 10기, 수혈 유구 2기, 널무덤 89기 등 모두 101기가 발견되었다. 이밖에도 시대 미상의 유구 31기가 발견되었다.

[출토 유물]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130기의 생활 유구와 113기의 분묘 유구를 발견하였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로는 장방형, 방형, 원형의 주거지가 모두 확인되었다. 장방형 주거지는 흔암리 유형의 주거지로 주거지 바닥에서 주공이 다수 확인되며, 무시설식의 노지와 토광형의 노지가 혼재되어 있거나 혹은 무시설식 노지가 다수 설치되어 있다.

장벽과 단벽의 하단부에 벽구를 돌리고 있는 경우도 일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 구순각목문토기, 공열문토기, 이중구연단사선공열문토기 등 다양한 구연부 문양 조합을 보이는 토기가 조사되었으며, 기종은 심발형토기, 호형토기, 옹형토기, 발형토기, 적색마연대부호, 적색마연호, 흑색마연대부호, 흑색마연발 등이 확인되었다. 이와 조합된 석기로는 이단경식 석촉, 일단경식 석촉, 석창, 양인석부, 반월형석도 등이 공반 출토되었다.

방형 주거지는 대부분 휴암리형 주거지로 중앙에 타원형의 수혈이 있고, 이것과 연결된 만(滿) 시설이 바닥에서 확인되었는데, 이것은 이전에 조사된 익산 영등동과 보령 관창리 등에서 확인된 바 있다. 원형 주거지는 송국리형 주거지로 장방형 주거지와 중복 관계를 보이고 있으며, 바닥 상면에 목탄층이 두껍게 덮여 있는 화재 주거지로 판단된다.

백제 유구로는 주거지, 수혈 유구, 분구묘, 돌덧널무덤 등이 조사되었다. 배치 상태를 보면, 분묘군이 유적의 서쪽 능선부와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반면, 생활 유적에 해당되는 주거군은 주능선의 중앙 남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주거지는 모두 Ⅰ지역의 중앙 남사면에서 확인되었으며, 평면 형태는 방형과 장방형이고, 4주식의 주거지와 불규칙한 주공 배치를 보이는 것들도 함께 조사되었다. 부뚜막 시설은 일부 주거지에서 확인되거나 일부 교란된 토양 상부에서 주거 형태가 없이 확인되었다. 그 외의 내부 시설로는 벽구 시설이 확인되었으며, 주거지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발형토기, 장란형토기, 시루 등이 있다.

분구묘는 6호, 8호, 9호의 주구가 일부 중복된 것 이외에 묘역을 서로 침범하지 않고 13기가 축조되어 있었다. 분구묘는 한 변이 20~40m 정도인 방형의 주구가 돌려져 있다. 그리고 대상부는 성토되어 있는 부분이 거의 남아 있지 않거나 많게는 2m 정도가 남아 있는 것도 있다. 매장 시설은 모두 널무덤으로, 목곽을 사용한 것과 사용하지 않은 것이 혼재되어 있으며, 하나의 분구 내부에서 적게는 1기에서 많게는 10기까지 확인되었다. 널무덤은 일단 말각방형의 형태로 굴광된 이후에 그 내부에 매장 시설을 안치하고 그 위에 흙을 채워 넣은 형태의 것과 단순히 수직 굴광하여 목관을 안치한 형태 등 서로 다른 매장 방법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분구묘의 출토 유물로는 직구단경원저호·광구원저호·광구장경원저호·원저호·소형토기 등의 토기류와 환두대도·철제초두·철부·철겸·철도자·철모 등의 철기류, 금동관모, 금동식리, 금동이식, 곡옥, 각종 구슬류 등이 있다. 특히 5호분의 경우 다른 분구묘와 달리 매장 시설이 1기만 있는 단독장 형태이고, 유구 내용도 차별적이며, 출토 유물 역시 금동관모, 철제초두, 금동이식, 곡옥 등 화려한 면이 있어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유구로는 주거지와 널무덤, 수혈 유구 등이 있다. 주거지는 모두 한쪽 벽면에 부뚜막과 구들 시설이 있는 평면 형태 부정원형인 것이 대부분이며, 분청사기편과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다. 널무덤은 총 93기 가운데 1기만 Ⅱ지역에서 조사되었고, 대부분은 Ⅰ지역의 구릉 상부와 남서사면을 이용하여 축조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청동 합, 청동 숟가락 등이 있다. 출토된 유물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과 국립공주박물관에 나누어 소장되어 있다.

[현황]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2006년 11월 6일에 사적 제475호로 지정되었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 일대 1만 4108㎡에 대한 고분 복원, 잔디 식재, 탐방로 개설 등 공원 정비 사업이 이루어져 현재는 일반에 공개되었다.

[의의와 평가]

서산 부장리 고분군의 조사 성과를 살펴보면, 먼저 청동기 시대의 경우 흔암리 유형의 전기 취락과 휴암리·송국리 유형의 중·후기 주거지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주변의 해미 휴암리 유적, 기지리 유적 등과 비교를 통해 서산 지역 청동기 시대의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백제의 경우 분구묘가 가장 특징적인데, 성토부의 잔존 상태가 양호하여 분구묘의 원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분구묘는 기존에 충청 지역에서 확인된 바 없는 것으로, 분구묘의 축조 과정과 확장 과정 그리고 분묘군의 형성 과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8호분에서 출토된 식리를 비롯하여 5호분의 금동관모와 철제초두 등의 위세품은 서산 부장리 고분군이 당시 서산 지역의 최상층 무덤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는 주변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서산 보원사지 등 기존에 알려진 불교 유적, 그리고 주변에서 확인된 기지리 유적의 분구묘를 비롯한 주변 지역 분구묘들의 존재와 함께 당시 서산 지역의 위상과 문화적 성격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