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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545
한자 佛像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집필자 여성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유물 위치 서산 마애삼존불상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0 지도보기
관련 유물 위치 보원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05 일원지도보기
관련 유물 위치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1 지도보기
관련 유물 위치 부석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1311 지도보기
관련 유물 위치 간월암 목조보살좌상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불교의 예배 대상을 조성한 조각상.

[개설]

불상(佛像)이란 불교의 교리에 의한 예배 대상을 석재나 금속 또는 흙이나 나무 등의 시각 매체를 통하여 조성한 조각상을 말한다. 엄격한 의미로는 붓다, 즉 여래(如來)의 존상만을 의미하나, 넓은 의미로는 보살상(菩薩像), 나한상(羅漢像), 조사상(祖師像), 천왕상(天王像), 명왕상(明王像) 등 불교 교리에서 말하는 모든 예배 대상을 포함한다. 이들은 상을 만드는 재료에 따라 석불·금동불·철불·소조불·목불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서산 지역에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하여 보원사지 관련 유적, 개심사, 문수사, 부석사, 일락사, 두우사 등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 그 흐름이 끊이지 않고 다양한 불교 유적이 존재하고 있다. 이 유적들은 서산 지역 불교문화의 속성은 물론, 불교 유적이 존재할 수 있었던 사회적 기반을 추정할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삼국 시대]

삼국 시대에 서산 지역은 백제의 대중국 교통로 역할을 하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와 관련된 불상 및 관련 유적들이 확인된다.

가장 대표적인 삼국 시대 불상은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 마애삼존불상’이다. 이 삼존 불상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0번지 가야산 계곡의 한쪽 절벽 바위에, 크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여래 입상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미소를 띠고 있는 반가 사유상, 그리고 양손으로 보주를 감싸고 서 있는 보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래 입상’은 복연단판(伏蓮單瓣)의 연꽃이 새겨진 연화좌(蓮花座) 위에 서 있다. 소발에 비교적 작은 육계(肉髻)가 있으며, 목은 짧아 삼도(三道)가 없다. 머리 뒤의 두광은 원 안에 단판(單瓣)의 연꽃이 새겨져 있고, 그 바깥에 불꽃 무늬가 양각된 보주형 광배를 하고 있다. 눈썹은 반원형이고 눈은 은행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코는 얇고 넓은 대신 입은 반쯤 벌린 채 미소를 머금고 있다.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며, 백제 특유의 자비로운 얼굴을 갖고 있다. 수인(手印)[모든 불보살의 깨달음의 내용이나 활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시]은 통인인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하고 있는데, 여원인을 맺은 왼손은 넷째 손가락과 다섯째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다. 이는 옛날 방식으로 삼국 시대의 불상 수인에서 흔히 나타난다.

왼쪽의 ‘반가 사유상(半跏思惟像)’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팔을 반가한 무릎에 괴고 손을 우측 뺨에 가볍게 댄 전형적인 반가 사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얼굴에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한껏 머금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목에 세로로 두 줄의 근육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는데, 이로 인해 얼굴의 미소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머리에는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삼면 보관(三面寶冠)을 썼다.

오른쪽의 ‘보살 입상’은 머리에 삼면 보관을 썼고, 그 좌우에 장식을 드리웠다. 얼굴이 본존에 비해 약간 긴 편이며, 실눈에 반원형의 입을 약간 벌리고 있어 역시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이다. 두 손은 앞으로 모아 보주(寶珠)를 잡고, 천의(天衣)는 두 팔에 걸친 채 U자형으로 늘어져 있다. 하의는 발등을 덮었으며, 발밑에는 이중의 복연(伏蓮)을 양각한 대좌가 마련되어 있다. 상체는 벗은 모습이고, 허리와 발끝의 옷 주름은 여래와 같은 고식(古式)이다. 머리 뒤에는 보주형의 광배가 있는데, 내부에 연화문이 있을 뿐 불꽃 무늬는 없다.

[통일 신라]

통일 신라에는 백제와 신라의 불교 조각 전통 위에 새로이 수용되는 중국 당나라 및 인도, 서역과의 문화 교류로 불교 미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불교 조각도 신체 비례에 균형이 잡히고, 얼굴의 세부 표현이나 몸체의 양감 및 사실적인 옷 주름 처리 등에서 뛰어난 조각 솜씨를 보여 준다.

서산 지역의 대표적인 통일 신라 불상으로는 보원사지 출토 철제여래좌상용현리 출토 금동여래입상이 있다.

철제여래좌상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철불로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인 철불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이 150㎝로 이목구비가 분명하며, 선이 유려하면서도 강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손은 떨어져 나갔지만, 팔의 자세로 보아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재료의 특성 때문에 마무리가 거칠기 마련인데, 이음매가 매끄러운 것으로 보아 높은 숙련도로 공들여 제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용현리 출토 금동여래입상은 1968년 4월에 보원사지 인근에서 출토되었다. 이 불상은 대좌(臺座) 위에 정면으로 직립한 형태로, 크기는 7㎝ 내외이다. 불상의 귀 일부분과 손이 파손되었지만, 잔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몸에 비해서 머리 부분을 약간 크게 조성한 점과 세부 표현 기법, 대좌의 형태 등에서 통일 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고려 시대]

고려 시대 불상은 크게 전기와 후기 양식으로 나누어지는데, 전기에는 통일 신라의 고전 양식 전통을 이어받아 사실적이면서 이상적인 특징이 표현된 불상과, 거대하면서도 다소 도식적인 추상성이 강조된 불상이 만들어졌다. 후기에는 단아하고 귀족적인 특징이 표현된 단아한 신사실적(新事實的) 양식이 나타나며, 원(元)나라 양식의 영향을 받은 불상과, 전기의 추상적 특징의 전통이 계승된 석불상(石佛像)도 보인다.

서산 지역의 대표적인 고려 시대 불상으로는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원사지 출토 철조여래좌상이 있다.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상의 형상이 단정하면서도 중후하며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조각 기법도 매우 정교하고 세련되었다. 고려 후기의 불상 양식을 잘 표현한 불상이다.

보원사지 출토 철조여래좌상은 높이 257㎝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철불 중 가장 거대한 불상이다. 조성 시기는 10세기라는 설과 11세기라는 견해가 있다. 이 불상은 규모는 크지만 전체적으로 조형미는 떨어진다. 추상화 되어 가는 네모꼴의 얼굴과 납작한 머리 형태 및 직선을 이루고 있는 눈과 입 등 그 형태에서 나말여초(羅末麗初)의 불상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는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이른바 억불 숭유(抑佛崇儒)의 정책으로 국가적인 후원이 줄어들어 불상은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경향을 보여 준다. 대체로 초기에는 고려 시대 불상의 격식에 따라 불상을 제작하였으나, 차츰 민간 신앙과 결합하여 토착적인 성격이 강해지면서 주로 개인의 행복이나 내세를 위한 소규모의 불상 제작과 개인용 불상 등이 많이 만들어졌다.

서산 지역의 대표적인 조선 시대 불상으로는 부석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간월암 목조보살좌상이 있다. 부석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689년(숙종 15)에 제작된 불상으로 높이는 약 101㎝이다. 불상 제작 재료가 목조인 관계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여 주지만, 조잡한 의습 표현 및 불상의 조각 수법에서도 조선 후기의 특징이 나타난다. 간월암 목조보살좌상간월암을 창건한 승려 자초(自超)[무학대사]가 조성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체에 비하여 두부가 다소 큰 편이지만, 신체는 안정감이 있고 균형이 잘 잡혀 있는 편이다. 이 불상은 상호(相好)나 조각 수법, 신체 비례의 안정성 등으로 볼 때 임진왜란 이후의 보살상과 차별성이 있으며, 조성 시기는 1600년 전후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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