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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511
한자 普願寺址出土金銅如來立像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93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여성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토|발굴 시기/일시 1968년 4월연표보기 - 보원사지 발굴 정비시 출토
현 소장처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1
출토|발견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93 지도보기
성격 불상|금동 여래 입상
재질 금동
크기(높이) 9.4㎝
소유자 국립중앙박물관
관리자 국립부여박물관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 인근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금동 여래 입상.

[개설]

보원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普願寺址出土金銅如來立像)은 1968년 4월 서산 보원사지를 발굴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는데, 서산 보원사지의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 200m 거리에 있는 경작지에서 출토되었다. 서산시에 거주하는 장세환이 운산면 용현리 거주민 장유성의 밭에서 부도편을 반출하기 위하여 인부에게 작업을 시키는 도중, 부도편을 들어내고 다음에 지대석을 들어내려고 땅을 파다가 지대석 부근의 땅속에서 발견하였다. 현재 보원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소유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되어 있다.

[형태]

뒷면과 주연 부분에 약간의 푸른 녹이 보일 뿐이며, 전체적인 도금 상태는 양호하여 금색이 찬연하다. 두 손은 손상이 심하고 두 발은 없어졌으며,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도 결실되었다.

불상 양식은 직립 정면 여래상으로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髻)가 높고 큼직하게 표현되었고, 약간 앞으로 숙인 얼굴은 직사각형에 가까워 갸름한 형태이나 근엄함이 풍긴다. 약간 풍만한 듯한 귀족적인 얼굴 형태로 입가에는 미소가 흐르고 있다. 목 부분은 원통형으로 삼도(三道)가 없이 조각되었고, 체구는 세장하여 날씬한 몸매를 하고 있다.

법의(法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식(通肩式)으로 가슴이 깊게 벌어져 속에 여며 입은 내의(內衣)가 보이며, 법의의 끝자락은 왼쪽 팔뚝에 걸쳐 넘겨져 있다. 법의의 아래 자락은 옆으로 넓게 퍼졌으나 그 뻗침이 심하지는 않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세우고, 왼손은 손바닥을 안으로 하여 소지와 무명지를 구부려 붙이고 다른 손가락을 곧게 아래로 내리고 있으니, 여래상에서 보이는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을 결하고 있다.

뒷면에는 아무런 조각도 없으며, 단지 상하에 2개의 방형 돌기가 있어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는 광배를 부착시키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높이는 9.4㎝이며, 두부가 2.3㎝, 견부 폭은 2.2㎝이다.

[특징]

보원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은 큼직하고 높다란 육계를 가지고 있으며, 상호는 길면서도 약간 풍만한 듯한 귀족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더불어 가늘고 긴 신체와 ‘V’자형의 층단식 옷 주름, 새 깃처럼 좌우로 뻗친 옷자락 등에서 불상에 내재(內在)된 불성(佛性)이 유감없이 표출되어 불상 제작자의 특출한 역량이 엿보인다.

이러한 특징들은 북위 양식을 반영하는 금동연가7년명 여래입상(金銅延嘉七年銘如來立像)[국보 제119호]이나 금동계미명 삼존불입상(金銅癸未銘三尊佛立像)[국보 제72호]과 관련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금동신묘명 삼존불입상(金銅辛卯銘三尊佛立像)[국보 제85호]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보원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보원사(普願寺)의 초창 연대 및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과의 관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발견 사례가 많지 않은 삼국 시대 금동 불상으로서 당대의 금동불 양식을 비교 연구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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