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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391
한자 倭寇-侵入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윤용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352년연표보기 - 왜구의 서산 첫 침입 기록
전개 시기/일시 1352년 3월연표보기 - 서주방호소에서 왜선 1척 섬멸
전개 시기/일시 1375년 9월연표보기 - 서산 왜구 침입
전개 시기/일시 1377년 4월연표보기 - 여미현 왜구 침입
전개 시기/일시 1378년 9월연표보기 - 서주 왜구 침입
전개 시기/일시 1379년 8월연표보기 - 여미현 왜구 침입
전개 시기/일시 1381년 9월연표보기 - 서산 왜구 침입
성격 왜구 침입 사건

[정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왜구가 침입한 사건.

[개설]

14~15세기에 왜구는 한반도 전 지역을 위협하였다. 그 가운데 일부는 충청남도와 서산 해안 지역에도 침입하여 민생을 더욱 도탄에 빠뜨리는 결과를 빚었다. 서산에 대한 왜구의 침입은 1352년(공민왕 1)부터 기록에 등장한다.

[역사적 배경]

14세기 공민왕 때는 고려가 원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시기였다. 그러나 이 시기 고려는 북쪽으로 홍건적, 남쪽으로 왜구의 침입이 지속되어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왜구의 침입은 고려 후기 169년간[1223~1392] 519회, 왜구가 창궐하던 1350년(충정왕 2) 이후 42년간에는 506회를 기록하였다. 지역이 확인되는 것은 총 472건이며, 영남, 호남과 함께 충청남도 지방이 특히 심하였다.

[경과]

충청남도의 왜구 침입 회수는 78회, 침입 지역은 38곳이며, 침입 횟수는 경상남도[97회]에 이어 두 번째이고 침입 지역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 후기 충청남도의 왜구 침입 내용을 살펴보면 왜적의 가장 주요한 침입 루트는 금강과 아산만 연안 및 연해(沿海)인 것을 알 수 있다.

서산 지역은 해변을 끼고 있는 지형의 특성상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1352년(공민왕 1) 3월 서주방호소에서 왜선 1척을 섬멸하고 2명을 포로로 잡았고, 1375년(우왕 1) 9월에 서산, 1377년(우왕 3) 4월에 여미현, 1378년(우왕 4) 9월에는 서주[현재의 서산]에 왜구가 침입하였다. 1379년(우왕 5) 8월에는 여미현, 1381년(우왕 7) 9월에는 서산에 침입하였다.

[결과]

왜구의 침입은 피폐한 고려 사회를 극도로 도탄에 빠뜨렸고, 특히 조운제의 운영에 큰 타격을 주어 고려 왕조의 붕괴를 재촉하였다.

[의의와 평가]

서산은 예부터 해양 교통로가 발달한 지역으로 고려 시대에는 충청남도에서 유일하게 고려 13개 조창 중 하나인 영풍창이 있을 정도로 교통로가 발달했던 곳이다. 따라서 왜구는 이러한 교통의 유리함과 창고가 있는 서산 일대를 노략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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