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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389
한자 漕運
이칭/별칭 조전,조만,해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윤용혁

[정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현물로 거둬들인 조세를 중앙으로 운반하던 제도.

[개설]

조운은 조전(漕轉)·조만(漕輓)·해조(海漕)라고도 한다. 주로 내륙의 수로(水路)나 해로(海路)를 이용하였다. 내륙의 수로를 이용하는 경우는 수운(水運) 또는 참운(站運), 해로를 이용하는 경우는 해운(海運)이라고 하였다. 서산은 개경으로 이어지는 서해 연안 항로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고 조운제의 근간이 되는 13조창의 하나인 영풍창이 설치된 지역이다.

[내용]

개성을 수도로 한 고려는 각 지방에서 여러 형태로 수취한 조세를 중앙으로 운송하고 이에 의하여 국가와 왕실, 귀족의 재정과 수요를 충당하였다. 고려는 물류의 거점으로서 13조창을 설정하고 육로와 내륙 수로, 연해 해로를 연결하여 전국의 세수 및 주요 물품이 개경으로 수집될 수 있도록 치밀한 물류 체계를 성립하였다. 고려 시대 조운제의 근간이 되는 13조창의 성립은 성종[982~997] 혹은 정종[1035~1046] 때의 일로 간주되고 있다.

여러 고을의 조세는 일단 창고에 운반하였다가 이듬해 2월부터 운송을 시작하여 개경에서 가까운 곳은 4월, 먼 곳에서는 5월까지 운송을 완료하였다. 조운제의 시행에서 서산 지역에는 13조창의 하나인 영풍창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주변에 개성 혹은 한양으로 연결되는 조운선이 출입하였다.

[변천]

고려 시대 조창 중심의 조운제는 13세기 몽고의 침입, 왜구 침략 등으로 크게 동요하여 조창 기능의 일부가 일반 군현으로 전가되었으며, 조운선 규모의 소형화, 사선(私船)의 등장 등으로 이어졌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운 제도가 운용되었는데, 서산 지역은 서해 연안 해로의 일부를 구성함으로써 개경 혹은 한양과 연결하는 교통로 상의 일정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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