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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384
한자 餘美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김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여미현에서 여읍으로 개정
개정 시기/일시 1018년연표보기 - 여미현이 운주에 속함
개정 시기/일시 1106년연표보기 - 여미현에 감무 설치
개정 시기/일시 1407년연표보기 - 여미현과 정해현을 통합하여 해미현으로 개편
관할 지역 여미현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일부 지역
관할 지역 여미현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일부 지역

[정의]

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운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개설]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에 해당된다. 이후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여미현(餘美縣)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운데 하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여미현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여촌현(餘村縣)은 지금의 여미현(餘美縣)에 해당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외에 구체적인 사료가 보이지 않아 당시 설치 경위와 목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이후에도 여미현의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고려 현종 때에 여미현은 운주의 관할이 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통일 전쟁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홍주(洪州) 여미현조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0, 충청도 해미현(海美縣) 건치연혁조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

[내용]

고려 시대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4개 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부성현, 여미현, 정해현, 지곡현이 그것이다. 이중 여미현은 서산의 북동부에 해당하는 음암면운산면의 일부 지역이다. 여미현은 신라 경덕왕 때 이름을 여읍(餘邑)이라 하였으며, 혜성군(槥城郡)[당진군 면천면]의 영현이었다.

1018년(현종 9)에 운주에 속했는데 이는 927년과 934년, 두 차례 치러진 고려 태조의 운주전투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후백제의 세력 아래 있었던 운주 성주 긍준(兢俊)이 처음에는 왕건과 대적하였으나 운주전투 이후에는 왕건에게 복속하였다. 이로 인하여 운주는 일대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여미현이 운주의 관할이 된 것으로 보인다.

[변천]

여미현은 본래 백제의 여촌현이었는데, 신라 757년(경덕왕 16)에 여읍으로 고쳐 혜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기에 다시 여미라 고쳤으며, 1018년에는 운주에 속했으며, 1106년(예종 1)에 감무를 두었다. 이후 1407년(태종 7)에 정해현여미현을 병합하여 해미현(海美縣)으로 고쳤는데 이는 정해현(貞海縣)의 ‘해’자와 여미현(餘美縣)의 ‘미’자를 합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여미현이 운주의 관할이 되는 정황을 통해서 고려 태조의 통일 전쟁 시 운주 성주 긍준의 왕건에 대한 기여 여부를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05.03 내용 수정 연도 오기 및 오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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