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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374
한자 西方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정재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서방성 - 충청남도 서산시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를 비롯한 삼국 시대 백제의 서쪽 지역을 관할하였던 지방의 중심 성(城).

[개설]

사비 시기[538~660] 백제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지방 통치 제도를 개편하였다. 수도인 사비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을 5방으로 나누고, 중심 성인 방성에 군과 현급의 성을 예속 관계로 설정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서방에는 도선성(刀先城)[역광성(力光城)]이 설치되었으며, 그 거리는 대략 도읍으로부터 서쪽으로 350리가량 떨어졌다고 한다.

서방성(西方城)의 위치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간에 이견이 있으나 서산 지역도 그중의 하나로 비정된다. 사비 시기 서산 지역은 대고구려·신라전의 해양 전진 기지이자 대중국 교통의 중심지로서 상당한 위상을 갖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서산 마애삼존불상, 서산 보원사지 등의 불교 유적은 당시 서산 지역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삼국은 고대 국가로 발돋움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여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는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며,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었다. 백제도 기존의 성(城)·촌(村)제로부터 담로제(擔魯制), 다시 방(方)·군(郡)·성(城)제로 점차 지방 통치 제도의 개편을 꾀하였다. 그 결과 중앙에 해당하는 수도를 중심으로 방위에 따라 오방성(五方城)을 설치하고, 지방 통치의 중심 치소로 하였다. 또한, 각 방성에는 다시 군성(郡城)과 현성(縣城)을 설치하여 지방 통치의 효율성을 도모하였다.

[관련 기록]

『주서(周書)』 권49 열전41 이역 상 백제조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 도읍(都邑)은 고마성(固麻城)이며, 그 바깥에 오방(五方)이 있으니 중방(中方)은 고사성(古沙城), 동방(東方)은 득안성(得安城), 남방(南方)은 구지하성(久知下城)[변성(卞城)], 서방(西方)은 도선성, 북방(北方)은 웅진성(熊津城)이라 말한다. …… 오방에는 각각 방령 1명이 있는데, 달솔(達率)로 삼았다. 군에는 장이 3명 있는데, 덕솔(德率)로 삼았다. 방은 군사 1,200명 이하 700명 이상을 거느린다. 성 내외의 백성과 여러 작은 성들로 모두 나뉘어 이에 예속되었다.”

[내용]

방·군·성제는 도읍을 중심으로 전국을 중·동·서·남·북의 5방으로 나누고, 중심 성인 방성에 군과 현급의 성을 예속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지방 통치의 효율을 높이고자 하였다. 다만 방-군-성 간의 수직 구조에 대해서는 통속 관계로 보는 견해와 직접적인 예속 관계에 있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중국 사서인 『주서』 이역열전(異域列傳) 백제조와 『한원(翰苑)』 번이부(蕃夷部) 백제조 인용 『괄지지(括地志)』에 따르면 중방은 고사성, 동방은 득안성, 남방은 구지하성, 서방은 도선성, 북방은 웅진성으로 나타난다. 중방성은 전라북도 고부 일대, 동방성은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 일대, 북방성은 충청남도 공주로 대체로 견해가 일치하고 있으나, 남방성과 서방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연구자 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괄지지』에 따르면 서방성은 ‘나라 서쪽으로 350리에 있으며, 성의 둘레가 200보’임을 전한다. 그러나 사비 시대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 지역으로부터 서쪽 350리를 가면 서해 가운데에 해당하여 기록에 모순이 발생한다. 따라서 서방성의 위치를 충청남도 서산 혹은 예산·대흥 일대, 구체적으로 임존성(任存城)에 비정하거나, 홍성·보령 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서산 지역으로 파악한 견해는 서방은 정서쪽 방향이 아닌 서북 방면을 지칭한 것에서 출발한다. 당시 수도였던 사비 지역의 서북방에 위치한 임존성을 서부로 파악한 중국 측 사료가 있어 수도 서북 방면에 서방성이 위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임존성 또한 그 후보지로 볼 수 있으나 거리가 맞지 않는다.

반면 서산은 해로상으로 『괄지지』의 거리와 대략 일치하며, 당시 이 지역이 백제의 해상 교통의 중심지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서방이 설치된 이유는 신라 당항성의 대척점으로 대중국 항로인 덕적도를 확보하고자 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서방성의 관할 범위는 홍성·보령·서천 등의 서해안 지역과 당진 지역을 관할하였다고 추정된다.

[변천]

서방성이 설치된 시기는 5방제의 실시와 무관하지 않다. 5방제가 실시된 시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6세기 무렵으로 연구자들 간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다만 6세기 전반 무령왕 대에 실시되었던 것으로 보거나 사비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실시된 것으로 파악한 견해, 사비 천도 이후 지방 제도 정비 과정에서 성립된 것으로 그 세부적인 실시 시기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사비성 점령 후 백제가 멸망하면서 5방제가 폐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마한(馬韓)의 한 소국에서 출발한 서산 지역은 백제 시대 때 기군(基郡)으로 편제되었다. 서산 지역은 백제의 내포 지역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되었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서산 지역의 중요성을 대변해 주고 있다. 특히 사비 시대에는 전략적인 중요성 때문에 서방성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서산 지역은 태안반도 일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해양과 내륙의 접합점으로서 의미가 있다. 백제 중앙 정부는 서산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내포 지역을 장악했으며, 고려 이후에 내포 지역의 중심지로 홍성이 부각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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