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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373
한자 平夷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정재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664년연표보기 - 당의 웅진도독부에 의해 평이현으로 개칭된 것으로 추정
공포 시기/일시 664년
폐지 시기/일시 667년연표보기 - 웅진도독부가 축출되며 평이현 폐지
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웅주 부성군의 속현으로 지육현 설치
개정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지곡현에서 지곡면으로 개편
관할 지역 평이현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일대

[정의]

백제 멸망 후 당군(唐軍)에 의해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개설]

660년 백제는 신라·당 연합군에 의해 수도인 사비성이 함락된 직후 멸망하였다. 당은 백제 고지(故地)에 대한 지배 야욕을 드러내며 행정 구역을 개편, 5도독부를 설치하였으나 백제 부흥군의 활동으로 실질적인 지배는 실현하지 못하였다. 이에 당은 백제 부흥군을 진압하고 664년 웅진도독부를 중심으로 지방 통치 체제를 개편하여 7주 51현을 설치하였다. 서산 지역은 지심주(支潯州)의 영현인 평이현(平夷縣)으로 편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당은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 백제 지역을 나누어 웅진(熊津)·마한(馬韓)·동명(東明)·금련(金漣)·덕안(德安)의 5도독부를 설치하였다. 하지만 지방 각지에서 백제 부흥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됨에 따라 실질적으로 당군이 지배한 곳은 웅진·사비 지역 일원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백제 부흥군 지도자 간 내분으로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 신라·당 연합군은 663년 백강구에서 백제·일본 연합군을 물리치고 주류성을 함락시켜 사실상 부흥 운동을 진압하였다. 당은 664년 부여융(扶餘隆)을 웅진도독으로 임명하여 백제 유민을 위무하는 동시에 1도독부 7주 51현의 웅진도독부 체제를 완성하였다. 지심주는 충청남도 예산 대흥을 중심으로 한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산 지역에서는 백제 시대 지육현평이현으로 명칭만 바뀐 채 지심주에 속하였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백제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조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지심주 9현 기문현(己汶縣)은 본래 금물(今勿)이었다. 지심현(支潯縣)은 본래 지삼촌[只村]이었다. 마진현(馬津縣)은 본래 고산(孤山)이었다. 자래현(子來縣)은 본래 부수지(夫首只)였다. 해례현(解禮縣)은 본래 개리이(皆利伊)였다. 고로현(古魯縣)은 본래 고마지(古麻只)였다. 평이현은 본래 지류(知留)였다. 산호현(珊瑚縣)은 본래 사호살(沙好薩)이었다. 융화현(隆化縣)은 본래 거사물(居斯勿)이었다.”

[내용]

백제 시대 지육현의 치소로는 지금의 지곡면 산성리 산 정상부에 조성된 부성산성(富城山城)이 유력하다. 백제 멸망 후 웅진도독부가 설치되었지만 지육현평이현으로 명칭만 바뀌었으므로 부성산성을 치소로 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 지육현평이현으로 개칭한 것은 서산 지역이 백제 멸망 후 부흥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때문에 ‘오랑캐를 평정하였다’는 의미로 표현하였던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따라서 평이현이 설치된 서산시 지곡면 일대가 백제 부흥 운동의 근거지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변천]

삼국 시대 백제의 지육현에서 백제가 멸망한 후 664년 웅진도독부 체제가 성립되었고, 지심주 평이현으로 개정되었다. 하지만 백제 고지를 점령하고자 했던 당군과 신라가 격돌한 신라·당 전쟁이 발발하여 다시 전운에 휩싸였다. 신라의 대대적인 공세에 667년 웅진도독부는 한반도에서 축출되어 만주의 건안고성으로 옮겨졌으며, 백제 고지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평이현도 자연스레 옛 지명으로 다시 돌아갔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757년(경덕왕 16)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웅주 부성군(富城郡)의 속현으로 지육현을 두었다. 고려 시대에는 양광도(楊廣道) 부성군의 영현인 지곡현(地谷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에 속하였으며, 1914년 지곡면으로 개편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660년 백제 멸망 이후 서산 지역은 백제 부흥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상으로는 자세히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웅진도독부 예하 영현으로 평이현이 설치된 것은 서산 지역에서 백제 부흥군의 항쟁이 매우 치열하였음을 추측케 한다. 백제 시대 지육현은 대산반도 일원을 관할하였는데, 이 지역은 중국과의 해상 교통의 요지로 잘 알려져 있다.

475년 백제의 남천 이후 중국과의 주요 교통로인 덕적도까지 불과 30㎞에 불과하다. 660년 소정방(蘇定方)이 이끄는 당군이 처음 도착한 지역도 덕적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지역은 백제 멸망 이후 당군의 교통로 확보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06.26 내용 수정 한자 수정,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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