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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306
한자 草綠里
영어음역 Choro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895년연표보기 - 해미군 상도면 초록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해미군 상도면 초록리에서 서산군 고북면 초록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서산군 고북면 초록리에서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2.52㎢
가구수 91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여) 213명(남자 105명, 여자 108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연암산(燕岩山) 아래에 새초풀이 파랗고 무성하게 자라서 ‘새푸르기’라 하였는데, 지명의 한자 표기에 따라 초록리(草綠里)로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해미군 고북2면에 초록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홍주목 고북면 초록리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초록리는 조선 시대에 55가구에 175명이 사는 큰 마을로 기록되어 있다. 1895년(고종 32)의 행정 구역 개편에서 해미군 상도면 초록리가 되었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초록리, 연화리(蓮花里), 가구전리(加口前里)의 각 일부 지역이 합해져 옛 그대로 초록리서산군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 초록리의 일부가 분할되어 간 곳은 가구리(加口里)로, 가구리와는 서로가 일부씩 떼어 주고받고 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초록리는 대체로 산골 마을로 당초에는 초록말에서 신촌으로 확산되었고, 1917년 8월부터 광복 전까지 495.87여㎡[150여 평]의 철공점이 있어 솥과 화로, 쟁기, 보습 등을 생산하는 야철업이 발달하였다. 광복 전후로는 옹기업이 성행하다가 1970년도 초반부터는 전국에서 질이 좋기로 유명한 고북 알타리무 재배로 소득을 높이는 고장이 되었다. 1995년 서산군과 서산시의 통합에 따라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초록1리 동북쪽에 연암산 줄기의 계곡인 큰골이 있는데, 마을의 골짜기가 주변 골짜기보다 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기포천의 발원지이다. 초록리는 초록팔경으로 유명한데, 제1경은 비봉재 일출, 제2경은 도비산(島飛山) 낙조, 제3경은 연암산 구성, 제4경은 냉천곡 명월, 제5경은 지방곡 채지, 제6경은 청용취 망해, 제7경은 조록동 춘일, 마지막으로 제8경은 도요지 환담이 있다.

[현황]

2010년 12월 기준으로 면적은 2.52㎢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91세대에 213명(남자 105명, 여자 10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중 초록1리는 24세대에 57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면 내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며, 초록2리는 67세대에 15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초록리에는 옛날 다리가 있어서 다리안말·움말·증말·가마터·조롱말리·진동·청량뿌리 새말·애미산·건너말 등의 지명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연암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연암산을 경계로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와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고북면 가구1리, 남쪽으로는 장요리, 북쪽으로는 가구2리와 접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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