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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042
한자 宗敎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집필자 민정희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개설]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의 다양한 종교가 발달되어 있는 지역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면서 한국 종교계가 탄압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들 종교는 독립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 현재까지도 지역 문화 발전 창달에 앞장서고 있다.

[불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불교가 구체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알기 어렵지만 백제 불교 유적으로 651년(의자왕 14)에 창건 된 개심사가 있으며, 일명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이 전해진다. 통일 신라 시대 불교 유적으로는 677년(문무왕 7)에 창건된 부석사가 있으며, 893년(진성여왕 7)에 부성군 태수였던 고운 최치원(崔致遠)이 건립했다고 전해지는 서광사도 있다.

고려 시대 사찰 유적으로는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제102호],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제103호],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04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보물 제105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보물 제106호] 등이 있다. 한편 가야산 주변 7개 마을에는 시대를 알 수 없는 미륵불이 남아 전하며, 억불 정책을 펼친 조선 왕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서산 지역 곳곳에 크고 작은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유교 문화가 언제, 어떠한 경로로 전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일찍이 당나라에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이름을 떨치고, 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춘 최치원이 893년에 이곳 부성군 태수로 부임한 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중국 저장성 출신으로 송나라 상서형부원외랑(尙書刑部員外郞)을 역임한 정신보(鄭臣保)가 송나라 멸망 후 1237년(고종 24) 서산의 간월도에 정착하였다. 정신보는 송나라의 문물과 유학을 전수한 공으로 1292년(충렬왕 18)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추증되고, 송곡서원에 배향되었다. 정신보의 아들 정인경(鄭仁卿) 또한 현달하여 서산 정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밖에도 고려 말 조선 초기에 많은 인물들이 활약하였다. 사암 류숙(柳淑)공민왕 때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하였으며, 류숙의 사촌인 금헌 유방택(柳方澤)[류방택]은 판서운관사를 지냈다. 류방택의 아들 류백순(柳伯淳)목은 이색(李穡)의 문하생으로 고려조에서 직제학을 역임하였으며,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군자의 도의를 지킨 인물이다.

1582년(선조 15)에 서산군수를 역임한 고경명(高敬命)의 영향도 컸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한영희(韓暎憙), 한경춘(韓慶春), 한여현(韓汝賢) 등은 고경명과 깊은 교류로 당시 서산의 유교를 이끌었던 인물들이다. 한편 김호윤(金好尹), 김호설, 이유겸, 이유직(李惟直), 이유성 등도 서산 지역의 유학을 새롭게 일구었으며, 조선 후기 학주 김홍욱(金弘郁) 등 많은 인물들이 서산 지역의 유학을 확고하게 자리매김하였다.

서산 지역은 대체로 기호학파의 영향권에 있었다. 기호학파의 정통으로 칭송되는 수암 권상하(權尙夏)의 제자인 남당 한원진(韓元震)이 서산과 가까운 홍성 지역에서 활동하였으며, 운산면 여미리 전주 이씨와 교류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기호학파의 종장 간재 전우가 서산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서산 지역의 대표적인 유교 유적으로는 서산향교, 해미향교, 서암서원, 부성사, 송곡사, 진충사 등이 있다. 효와 충을 생활의 기본 덕목으로 삼아 온 서산 지역 유교와 선비정신은 오늘날에도 존중되어 서산 지역 사람들의 삶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천주교]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서해안에 인접한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매우 이른 시기 천주교를 수용하고 많은 신자들을 배출 한 주요 지역이다. 서산 지역에서는 1795년 이전 부터 천주교 순교자를 배출하였으며, 1860년경에는 박해를 피해온 신자들이 운산면 용현리 2구 강당마을용현리 1구 용나름이에 천주교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천주교의 교세가 본격적으로 확장된 것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이다. 이 시기에 호서좌영이었던 서산 해미읍성에서 많은 순교자가 처형되기도 하였다. 천주교 관련 순교 유적지는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해미읍성 형장 길의 돌다리, 조산리 생매장 터 순교지 순교탑, 천주교 진둠벙 순교지, 서산 해미성지 무명 생매장 순교자 묘 등이 대표적이다.

[개신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는 개신교 교파 중 대한감리회 서산제일교회가 처음 개척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 참배 뿐 만 아니라 교회 집기 등을 압수당해 신앙 활동이 위축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많은 교회들이 설립되어 신자들의 안식처가 되어 왔으며, 또한 지역 사회 및 문화 발전에도 크게 공헌해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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