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033
한자 先史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선사/선사
집필자 이현숙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의 시대.

[개설]

우리나라에 있어 선사 시대라 함은 구석기 시대·중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 그리고 초기 철기 시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며, 약 70만 년 전부터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역사 시대는 우리나라의 경우 서력기원 전후인 삼국 시대 형성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약 2,000여 년 간을 가리킨다.

충청남도의 서북부에 자리하고 있는 서산 지역은 해수면이 얕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리아스식 해안선을 이루고 있어 선사 시대 이래로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선사인들의 삶의 터전이 되어왔고, 역사 시대 들어와서는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주목된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정밀한 조사 사례가 많지 않아 서산 지역에 대한 문화상을 살피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최근 서해안 지역에서 다양한 고고학 조사가 진행되면서 서산 지역의 문화적 특성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서산 휴암리 선사 유적지, 기지리 유적, 서산 부장리 고분군 등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유적의 경우 전체적인 취락의 규모나 출토 유물의 특성상, 발달된 선사 문화를 영위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란 최초의 고인류가 등장한 때부터 약 1만 2000년 무렵 플라이스토세가 끝날 때까지에 이르는 긴 시간대에 걸친 인류 문화의 원초 단계를 가리킨다. 주로 뗀석기를 사용하며, 이동 생활을 주로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활 유적으로는 주로 동굴 유적이나 한데 유적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생업은 주로 수렵·채집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산 지역에서 확인된 구석기 시대 유적은 주로 유물 산포지의 형태로 확인되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석남동 구석기 유적, 일람리 구석기 유적, 도당리 구석기 유적, 대로리 주거지 유적 등이 있다. 이들 유적지는 비록 정밀한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밀개, 긁개, 격지, 찌르개 등이 발견되었다.

그동안 서산 지역에서 존재가 확인된 구석기 시대 유적은 매우 적은 수에 불과하지만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의 해안 변에서부터 내륙 깊숙한 곳이라 할 수 있는 음암면 도당리에 이르기까지 유적이 넓게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산 전역이 구석기인들의 활동 무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는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와 질그릇[토기]을 도구로 사용하여 식량 생산 단계에 이른 시대를 말한다. 우리나라에 있어 신석기 시대는 B.C. 8000년경에 시작되어 B.C. 2000년에서 1500년 무렵 청동기 시대가 시작하며 끝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구석기 시대 이후 플라이스토세 빙하기가 끝나고 홀로세에 들어오면서 오늘날과 같은 기후로 변해 농업 생산에 적합한 시기에 돌입하면서, 생업 경제와 주거 문화상의 큰 변화가 이루어졌다.

즉 신석기 시대는 뗀석기를 쓰던 구석기 시대와 달리 간석기를 만들어 사용한 시대라는 뜻으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 생활과 토기 제작이 신석기 시대의 특징적인 문화 요소로 이해되고 있다. 한반도 내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신석기 시대 유적은 대략 200여 곳이 넘는데 확인되는 주요 유적으로는 주거지, 패총, 야외유구, 매장 유적 등이 있다.

현재까지 서산 지역에서 확인된 신석기 시대 유적은 대산리 신석기 유적, 웅도리 조개더미, 대죽리 조개더미, 서산 휴암리 선사 유적지, 기지리 유적 등이 있다. 대부분의 유적은 구석기 시대 유적과 마찬가지로 주로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 유적에서 신석기 시대 주거지가 조사됨으로써 서산 지역의 신석기 시대 문화상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는 인류의 물질문화 발전 단계에서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기부터 철기를 사용하기 직전까지의 시기로, 한반도에서는 B.C. 2000~1500년 무렵부터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는 것으로 본다. 이 시기에 들어와 인류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특히 기존에 사용하던 석기 이외에 새로운 도구로 청동기가 제작될 뿐만 아니라 생활 방식에 있어서도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됨에 따라 집단으로 한 곳에 정착하여 농경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생업은 주로 농경 생활과 수렵·채집 생활을 병행했으며, 주거지는 강가의 구릉이나 능선 상부에 분포하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 구석기 시대나 신석기 시대에 비해 유적의 수나 규모가 크게 증가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서산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서산 지역에서 확인되는 청동기 시대 유적은 주거지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분묘와 패총, 그리고 유물 출토지로 크게 구분된다. 최근 고고학적 발굴 조사가 증가하면서 청동기 시대 취락이 대단위로 확인된 사례가 많은데, 주거지의 경우 세장방형의 청동기 시대 전기 유적에서부터 원형과 장방형의 후기 유적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인 발전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확인되었다. 대표적인 유적은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기지리, 음암면 부장리·유계리, 갈산리 유적, 대산읍 대로리 유적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자료의 증가를 기초로 하여 서해안 지역 청동기 시대 문화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초기 철기 시대]

한국 고고학에서 초기 철기 시대라 부르는 시기는 대체로 B.C. 300년 무렵부터 B.C. 100년경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는 중국 연나라의 영향으로 철기가 보급되기는 하지만, 한반도 안에서는 오히려 청동기의 제작 기술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으며 청동기 시대에 사용되던 간석기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서산 지역에서는 그동안 초기 철기 시대 유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예천동 유적에서 토광묘 2기와 옹관묘 1기가 조사되어 그 실상이 알려지게 되면서 서산 지역의 초기 철기 시대 문화의 일면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조사된 토광묘는 목관을 사용한 것으로 내부에서는 검파두식(劍把頭飾), 덧띠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옹관묘는 우각형파수부호(牛角形把手附壺)와 아가리[口緣部]에 점토띠가 돌려진 옹을 이용해 옆으로 뉘어서 안치한 합구식(合口式)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