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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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남산리의 ‘남’자와 정동의 ‘정’자를 따서 남정리(南井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남산뫼[南山里], 공슈골[葛山里], 얌골[井洞]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남정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인정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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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봉건·반외세 농민 봉기. 서산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이 왕성하던 곳으로, 1894년 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 예산과 더불어 예포 농민군의 중심 근거지였다. 예포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운 홍주성 전투는 대단히 규모가 큰 전투였으며, 서산 지역에서는 해미성 전투와 매현 전투 등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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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내에 백자 가마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축되는 사기점(沙器店)이 있었으므로 사기소(沙器所), 사기포(沙器浦) 또는 사기리(沙器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사리소[沙器所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895년 사기소리(沙器所里)와 청동(淸洞)으로 분할되기 전의 사기리는 64가구에 176명이 사는 제법 큰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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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야당리를 흐르는 하천. 하천의 이름은 마을 이름인 야당리(野堂里)에서 유래하였다. 『서산군지』에는 야당천(野堂川)이 야당리천(野堂里川)으로 나와 있다. “야당리천은 갈산리(葛山里)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남쪽으로 풍전리 앞들로 흘러 개앙보(開仰洑)·송급보(松急洑)·전보(前洑)가 되고, 차리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동쪽 화수리로 흘러 석보(石洑)·순경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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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왕조의 지방지배체제는 ‘갑오·을미개혁’ 이후 커다란 변화를 거쳤다. 『서산군지(瑞山郡誌)』에 따르면, 1895년 부(府)·군(郡)·현(縣)제를 일체 폐지하여 군으로서 명칭을 통일하고 각 군을 군세(郡勢)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하였다. 그런 뒤 군에는 군수를, 면에는 면장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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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를 거쳐 천안과 장항을 잇는 철도.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서산 등의 내포 지역은 일제 강점기 철도 교통의 사각지대에 속하였다. 1931년 8월 천안과 장항을 잇는 충남선[현 장항선]의 완공으로 기존에 바닷길을 통해 인천을 경유하던 서산 지역의 물산이 철도를 통해 장항이나 경성[천안 경유] 방면으로 이출되기 시작하였다. 서산 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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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1월 충청남도 서산의 해미성에서 벌어진 내포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 1894년 이른바 예포[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봉기를 일으킬 때, 서산 지역의 동학 교도들은 예포 농민군의 주력군 역할을 수행하였다. 홍주성 전투는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동학 농민 전쟁사에 새롭게 기록해야 할 중요한 전투였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농민군은 이후 해미성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