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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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관아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는 옛날에 널리 쓰인 통신 수단이다. 이를 봉화, 봉수대, 봉화대 등이라고도 한다.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로써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신호를 보내어 변경의 위급을 중앙에 통보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고려 때부터 비롯된 봉수 제도를 이어받아 좀 더 체계적인 봉수 제도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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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읍성.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은 1416년(태종 16) 이후 예산 덕산(德山)에서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이 서산으로 이설된 뒤, 1652년(효종 3) 청주로 옮겨 가기 전까지 약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거점성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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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홍양일기(洪陽日記)』의 저자. 본관은 파평. 아버지는 윤선필(尹善必)이다. 윤시영(尹始永)[1855~?]은 1891년(고종 28) 문과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 홍문관교리, 홍문관부수찬, 중학교수, 양호선무사종사관, 부안현감, 홍문관시독, 비서원승을 지냈다. 1902년(고종 39) 함흥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안핵사(按覈使)로 파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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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都使營). 조선 초기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되었다가,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태종 17) 이후 해미로 이설되었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되었고 1652년(효종 3)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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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서산시 해미면 양림리 청주 한씨의 입향조. 한효순(韓孝純)[1543~1621]은 기축옥사(己丑獄死)에 연루되어 1590년(선조 23)에 파직되자, 같은 해 8월 지금의 서산시 해미면 양림리에 은거하였다. 이 일대에 선대에 하사 받은 땅이 있었는데 작은 농사(農舍)를 짓고 정착했다고 하며, 서산 강씨 강효윤(姜孝胤)의 딸을 후취 부인으로 맞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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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충청도 서산을 비롯한 각 군현에서 작성한 읍지와 사례들을 합편한 충청도의 도지. 1871년(고종 8) 전국적인 읍지 편찬 계획이 수립되어, 충청도의 각 군현에서 모인 읍지들을 17책으로 만들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호서읍지(湖西邑誌)』는 총 1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20㎝, 세로 30.4㎝이다. 『호서읍지(湖西邑誌)』 각 책별 54개의 읍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