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 해미면 대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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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심곡리(深谷里), 신흥리(新興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한틔골, 집푸실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대곡’이라는 명칭은 『조선지지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흥리의 한글 표현 한틔골의 한자 표기인 대치(大峙)의 ‘대’자와 심곡의 ‘곡’자를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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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와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에 걸쳐 있는 산. 뒷산의 고개는 한티, 한치, 대티, 홍주한치 등으로 불렸다. 한티, 한치, 대티는 큰 고개라는 의미이며, 홍주한치란 조선 시대 내포 지역의 중심지였던 홍주[지금의 홍성]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뒷산 밑의 삼거리라는 지명 또한 덕산과 홍성, 해미로 간다는 의미에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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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리(草綠里)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맨 아래 끝자락인 고북면 동쪽에 자리한 마을로, 이웃한 장요리와 함께 홍성군 갈산면 대산리에 인접해 있다. 초록리는 조선 후기 판소리 중고제의 명창인 고수관(高壽寬)[1764~1849]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초록리는 18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옹기, 질그릇, 쇠솥 등을 만들어 팔았던 그릇 장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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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형성된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공동체 마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자 신자들은 보다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이러한 교인들이 모여 신앙 공동체를 이룬 곳이 교우촌이다. 천주교 박해기에 교우촌은 서양인 선교사들의 은거지와 신자들의 피신처 역할을 하였으며, 박해 이후에는 그대로 공소로 발전하였다. 이들 교우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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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암산(燕岩山) 아래에 새초풀이 파랗고 무성하게 자라서 ‘새푸르기’라 하였는데, 지명의 한자 표기에 따라 초록리(草綠里)로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해미군 고북2면에 초록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홍주목 고북면 초록리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초록리는 조선 시대에 55가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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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대치리에서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로 넘어가는 가야산의 한 고개로 천주교 신자들이 압송되던 길. 내포 지방은 가야산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여러 고을들을 포함한 지역을 이른다. 따라서 내포의 각지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해미 진영으로 압송되어 가기 위해서는 가야산을 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삽교천 인근에서 체포된 교인들이 해미로 압송되기 위해...